정년 65세 시대, 서로에게 덜 미안한 일자리의 조건
정년 65세 논의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언제, 어떤 방식으로 다가올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현실의 문제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1편에서는 “할아버지의 일자리가 손자의 밥그릇을 빼앗는가”라는 오해를 살펴보았고, 2편에서는 청년과 시니어의 일자리가 실제로 얼마나 겹치는지 노동시장 구조를 통해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남은 질문은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정년 65세 시대가 눈앞으로 다가온다면, 각 세대와 사회는 무엇을 준비해야 덜 불안하고 덜 미안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정년을 늘릴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찬반 구도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인구 구조를 보면, 앞으로는 어쩔 수 없이 더 오래 일해야 하는 시대가 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논의의 무게중심은 “더 오래 일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어떤 조건에서, 어떤 역할을 나누어 오래 일할 것인가”로 옮겨져야 합니다. 이 글에서는 시니어·청년·기업·정책, 네 주체를 중심으로 정년 65세 시대의 전략을 차분하게 정리해 보려 합니다.
시니어에게 필요한 것: 오래 버티기보다 오래 역할을 바꾸는 준비
정년 연장이 시니어에게 주는 가장 큰 메시지는 단순합니다. “더 오래 일할 수 있다”가 아니라, “더 오래 일해야만 한다”에 가깝습니다. 기대수명은 길어지고, 연금과 저축만으로는 버티기 어려운 현실에서, 일은 생계와 자존감을 동시에 지키는 수단이 됩니다. 그렇다면 시니어에게 필요한 전략은 “같은 일을 최대한 오래 버티는 것”이 아니라, “나이 들어도 할 수 있는 일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때 중요한 기준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체력과 건강을 크게 소모하지 않는 일인가. 둘째, 디지털과 기본 도구를 다룰 수 있게 나를 업데이트해 두었는가. 셋째, 내가 가진 경험과 강점을 다른 세대·조직에 전해 줄 수 있는 형태로 정리해 두었는가입니다. 정년 65세 시대에 시니어는 단순히 “오래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현장 경험과 관계를 묶어 다음 세대와 조직에 전해주는 “연결자” 역할을 맡게 됩니다. 이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60대 초반부터의 준비에서 갈립니다.
청년에게 필요한 것: 비켜주는 자리가 아니라 새로 열릴 자리를 읽는 감각
청년에게 정년 65세 시대는 부담스러운 소식일 수 있습니다. “앞자리가 더 천천히 비워진다”는 불안이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미 많은 산업에서 중요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자동화·디지털 전환·고령사회·돌봄 확대 등으로 인해,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일자리와 직무가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청년에게 중요한 것은 “위 세대가 언제 물러나는지”보다, “어떤 영역이 커지고, 어떤 영역이 줄어드는지 읽는 힘”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세 가지 태도가 필요합니다. 첫째, 특정 직장·직급만을 목표로 삼기보다 산업과 역할의 방향성을 함께 보는 습관. 둘째, 직무가 변해도 따라갈 수 있도록 기본적인 디지털·데이터·커뮤니케이션 역량을 넓게 가져가는 것. 셋째, 세대가 섞여 있는 팀에서 배우고 일하는 경험을 피하지 않는 것입니다. 시니어의 경험과 청년의 기술이 만나야 새로운 역할이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정년 65세 시대에 청년에게 중요한 전략은 “비켜주는 자리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새로 열리는 영역으로 움직일 수 있는 기동성”입니다.
기업에게 필요한 것: 한 세대를 오래 데려가는 대신 세대를 섞어 쓰는 구조
기업 입장에서 정년연장은 비용과 리스크의 문제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인건비 부담, 승진 정체, 조직 경직성 등 다양한 우려가 따라옵니다. 그러나 인구가 빠르게 줄어드는 현실을 생각하면, “젊고 값싼 인력만으로 조직을 유지하겠다”는 전략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정년 65세 시대에 기업이 준비해야 할 것은 한 세대를 오래 붙잡아 두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세대가 함께 일할 수 있는 팀을 설계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기업이 할 수 있는 일은 의외로 구체적입니다. 예를 들어, 현장 경험이 많은 시니어를 안전·품질·교육·멘토 역할로 재배치하고, 대신 일부 루틴 업무를 청년에게 맡기는 방식이 있습니다. 또한 프로젝트 단위·파트타임·재고용 제도를 유연하게 도입해, 시니어가 건강과 삶의 속도에 맞춰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결국 기업이 선택해야 할 것은 “연령으로 자르느냐”, “역할과 기여도로 조정하느냐”의 문제입니다. 후자를 선택할수록 세대가 섞여 일할 수 있는 공간이 넓어집니다.
정책에게 필요한 것: 정년 숫자가 아니라 전 생애 일자리 설계
정책 차원에서 정년 연장을 논의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정년이라는 숫자를 단독으로 움직이는 것의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는 일입니다. 정년 나이만 바꾸고 일자리 구조·재교육·사회보험 제도가 그대로라면, 세대 갈등과 피로감만 커질 수 있습니다. 정년연장 논의는 반드시 재교육·직무 전환·탄력적 근무·부분 은퇴·재취업 지원과 함께 묶어서 설계되어야 합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전 생애에 걸친 일자리 설계 관점입니다. 20~30대에는 직무 역량을 키우고, 40~50대에는 역할과 전문성을 재정비하며, 60대 이후에는 건강·경험·사회적 기여를 균형 있게 고려한 새로운 일을 설계할 수 있도록 돕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정년 65세 시대의 좋은 정책은 “언제 그만둘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일의 강도와 역할을 조절하며 오래 일할 것인가”를 안내하는 정책입니다.
서로에게 덜 미안한 일자리의 조건
정년 65세 시대에 우리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어느 세대도 과도한 죄책감이나 분노를 품지 않아도 되는 일자리 구조일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조건은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역할 기준이 분명한 일자리. 나이보다 맡은 역할과 기여도를 중심으로 일의 기준을 세우는 것입니다. 둘째, 세대가 섞여 일하는 팀 구조. 한 세대만 꽉 찬 조직보다, 서로 다른 연령이 섞인 조직이 변화에 더 잘 대응합니다. 셋째, 은퇴와 재취업 사이에 ‘완충 구간’을 두는 경력 설계입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조건은 “대신 탓하기”를 멈추는 태도입니다. 청년이 “정년연장이 문제”라고 말하는 사이, 시니어는 “내가 더 일하면 아이들 자리를 빼앗는 건 아닐까”를 두려워합니다. 이 둘 사이에는 언제나 “정년”이라는 한 단어가 끼어 있습니다. 이제는 그 단어를 사이에 둔 채 서로를 탓하기보다,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무엇을 바꿀 수 있을지 생각할 시점입니다. 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는, 먼저 구조를 정확히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정년 65세 시대를 준비하는 나만의 질문
정년 논의는 정치와 제도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각자의 삶의 문제로 돌아옵니다. 시니어에게는 “나는 앞으로 어떤 일을, 어떤 속도로 이어갈 것인가”라는 질문이 되고, 청년에게는 “나는 어떤 영역에서 나만의 역할을 만들어갈 것인가”라는 질문이 됩니다. 기업에게는 “어떤 세대 구성으로 회사를 유지할 것인가”, 정책에게는 “누가 어느 시점에서 어떤 안전망과 기회를 가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이 세 편의 글이 정년연장을 둘러싼 모든 답을 주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하나의 기준은 건네고 싶습니다. “정년을 어떻게 볼 것인가”의 기준을 세대 탓이 아니라 구조와 역할에서 찾을 것, 그리고 “나는 내 자리에서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를 차분히 묻는 기준입니다. 정년 65세 시대를 준비하는 가장 현실적인 출발점은, 거창한 결론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던지는 이 작은 질문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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