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권리로 본 나이 들어가는 나의 삶 ⑥-일할 권리, 멈출 권리

권리로 본 나이 들어가는 나의 삶 ⑥
일할 권리, 멈출 권리

나이 들어서도 일하는 것은 요즘 한국 사회에서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다만 그 일터에서 나이 든 사람은 종종 이런 마음을 품게 됩니다. “일 시켜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처지지.” “조건 이야기하면, 다음엔 부르지 않겠지.” “이 나이에 새로 시작하는 내가 욕심을 내나…”

그러나 일은 단지 ‘용돈벌이’가 아니라 존재감과 자존감을 지탱하는 중요한 축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나이 들었다는 이유로, 어디까지 일할 권리와 멈출 권리를 말할 수 있는가.”

1. “시켜주는 대로”만 남기면 생기는 일

나이가 들수록 일자리는 줄고, 조건은 나빠지기 쉽습니다. 짧은 계약, 낮은 임금, 불규칙한 시간, 안전장비 없이 하는 힘든 일들.

“그래도 어디야, 집에 있는 것보다는 낫지.” 이 말 뒤에는 “그러니 아무 조건도 말하지 말자”는 체념이 숨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분명합니다.

몸을 혹사하다 병이 생기고, 위험한 환경에서 다치면서도 “내가 조심했어야지”라고 스스로를 탓하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기준을 바꾸어야 합니다.

“일할 수 있는 권리와,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울 때 멈출 권리는 나이와 상관없이 모두에게 있다.”

2. 나이 들어 일할 때 기억해야 할 네 가지 기준

첫째, 안전할 권리.
아무리 짧은 시간, 낮은 임금의 일이라도 기본적인 안전장비와 휴식, 과도한 중노동을 피할 권리가 있습니다.

“이 일을 할 때 지켜야 할 안전수칙을 알려 주시겠습니까?”
“제 체력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와 시간은 조정할 수 있을까요?”

이런 질문은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라 자기 몸에 책임을 지는 사람의 말입니다.

둘째, 최소한의 보장을 요구할 권리.
시급, 근무시간, 휴게시간, 급여일, 4대 보험 여부 등 기본 조건은 알고 시작해야 합니다.

“급여는 언제, 어떤 방식으로 지급되는지요?”
“근무시간과 휴게시간을 미리 정하고 싶습니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조건을 묻지 않고 시작해야 하는 법은 없습니다.

셋째, ‘이제는 멈출 수 있다’고 말할 권리.
일은 곧 자존감이기에 “이만하면 됐다”고 말하는 순간을 잡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몸이 보내는 신호는 정직합니다.

일을 다녀오면 며칠씩 회복이 안 되는지, 통증과 피로가 쌓여 일상생활이 무너지는지 살펴보고 “이제는 줄이거나 멈출 때가 됐다”고 스스로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넷째, 일 말고도 ‘나의 역할’을 찾을 권리.
일을 줄이거나 멈춘다고 해서 내 존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돌봄, 봉사, 동네 활동, 배움과 나눔 등 다른 형태의 역할을 찾을 권리가 있습니다.

3. 오늘, 스스로를 위해 해볼 수 있는 세 가지

권리는 일터에서만이 아니라, 오늘 집에서부터 준비할 수 있습니다.

1) 지금 하는 일의 ‘몸값’을 계산해 보기.
일을 다녀온 날과 다음 날의 몸 상태를 적어 봅니다. 통증, 피로, 수면, 식사, 기분을 간단히 기록해 두고, 받는 임금과 비교해 봅니다. “이 일을 계속할 만한지, 줄일지, 바꿀지”를 감으로가 아니라 기록으로 판단해 보는 것입니다.

2) 일하고 싶은 이유를 정직하게 적어 보기.
“돈 때문인지,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인지, 일하는 나 자신이 좋아서인지, 집에만 있으면 우울해져서인지.” 이유를 알면, 꼭 지금 하는 방식이 아니더라도 다른 선택을 찾을 수 있습니다.

3) 가족과 ‘일과 멈춤’에 대한 대화 나누기.
“내가 일하는 건 단지 돈 때문만은 아니다.” “하지만 몸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하면, 멈출 수 있게 도와달라.”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억지로 붙잡히는 노동”도, “말도 못 하고 그만두는 상황”도 줄어듭니다.

4. 함께 요구해야 할 세 가지 방향

첫째, 고령자 일자리의 질을 묻는 사회.
“일 시켜준다는데 뭘 더 바라냐”가 아니라, “이 일이 이 나이에 맞는 조건과 안전을 갖추었는가”를 질문하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임금뿐 아니라 안전, 휴식, 존중이 함께 논의되어야 합니다.

둘째, 일과 연금을 함께 설계하는 제도.
연금과 근로소득이 함께 어울리도록, 일을 줄여도 생활이 무너지지 않도록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돈 때문에 몸이 부서져도 계속 일해야 하는 노년”이 줄어듭니다.

셋째, 일 대신 다른 역할을 인정하는 문화.
돌봄, 자원봉사, 동네에서의 경험 나눔 같은 역할도 “노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기여하는 활동으로 존중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돈 버는 일”을 내려놓은 뒤에도, 한 사람의 존재가 공백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5. 이 편이 남기고 싶은 한 줄

이 글은 “끝까지 일하라”도, “이제 그만 쉬어라”도 아닙니다. 단지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나는 나이 들었다는 이유로, 조건도 모른 채 아무 일이나 해야 할 사람이 아니다. 일할 권리와, 멈출 권리, 그리고 다른 역할을 선택할 권리가 있는 시민이다.”

이 문장을 마음 한편에 세워 두신다면, 앞으로 마주할 일터와 제안들 앞에서 “고마우니까 아무 말도 하지 말자”가 아니라 “내 몸과 삶에 맞는지 먼저 살펴보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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