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시대, 걷는 나 – 러닝 열풍 속에서 나도 달려야 할까
산책길을 걷다 보면 풍경이 뚜렷이 나뉠 때가 있습니다. 한쪽에는 이어폰을 끼고 리듬을 타며 달리는 젊은이들, 다른 한쪽에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시니어들. 누구도 “왜 안 뛰세요?”라고 묻지 않지만, 그 장면을 바라보는 순간 문득 나이를 실감하게 됩니다. 예전에는 나 역시 저 속도로 달렸을 것 같은데, 지금의 나는 어느새 걷는 사람 편에 서 있다는 사실이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이때 드는 감정은 단순히 “체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아쉬움이 아닙니다. 마치 시대의 속도와 사람들의 리듬이 달라진 가운데, 나의 자리가 어디쯤인가를 확인하는 순간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마음속에서는 자연스럽게 이런 말이 떠오릅니다. 나도 달리고 싶은데, 왜 이제는 걸음만 옮기고 있을까.
요즘 사회를 두고 많은 전문가들은 “속도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정보가 이동하는 속도, 기술이 바뀌는 속도, 사람들의 일상이 흘러가는 속도가 모두 빨라진 탓입니다. 그리고 이 속도감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장면 중 하나가 바로 러닝 열풍입니다. 공원과 한강, 동네 산책길마다 달리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 풍경은 이제 낯설지 않습니다.
달리는 사람들 사이를 걸어가는 시니어의 마음을 이해하려면, 먼저 이 러닝 열풍이 왜 이렇게 커졌는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러닝 열풍은 왜 생겼을까 – 전문가들이 말하는 이유
운동생리학자들은 요즘 러닝이 각광받는 이유를 “효율성”에서 찾습니다. 별다른 장비가 필요 없고, 집 근처 공원이나 동네 도로만 있어도 곧바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짧은 시간에 심폐지구력을 키울 수 있고, 체지방 감소 효과도 분명해서 바쁜 생활 속에서 투자 대비 효과가 높은 운동이라는 설명입니다.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러닝이 주는 감정적 보상에 주목합니다. 일정 시간 이상 달리면 엔도르핀, 세로토닌 같은 물질이 분비되면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이른바 ‘러너스 하이’라고 부르는 상태입니다. 일상의 스트레스와 불안을 잠시 내려놓고 싶어 하는 현대인에게 러닝은 간단하면서도 강력한 해소 방법이 됩니다.
사회학자들은 러닝을 하나의 문화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SNS에는 새벽 러닝 인증샷, 마라톤 완주 사진, 러닝 크루 모임 소식이 끊임없이 올라옵니다. ‘함께 달리는 사람들’ 사이에 속하고 싶어 하는 욕구, 건강하고 자기 관리를 잘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이 러닝 열풍을 더 키운다는 분석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흐름이 만들어 낸 풍경 한가운데에서 시니어는 종종 ‘걸어가는 사람’으로만 남게 됩니다. 달리는 인파 사이를 묵묵히 걷는 순간, 속도 차이가 곧 나이 차이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나는 걷고, 저들은 달린다”라는 풍경이 주는 심리
운동심리학자들은 노화와 속도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나이가 들면 몸의 속도가 느려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더 큰 요인은 주변 속도가 빨라진다는 느낌이다.” 예전과 비슷한 속도로 걷고 있어도, 옆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속도가 훨씬 빠르게 느껴질수록 스스로가 더 늙어 보인다는 것입니다.
달리는 젊은이들 사이를 걷다 보면 여러 감정이 겹쳐집니다. 나도 한때는 저렇게 뛰어다녔다는 기억, 이제는 무릎이 예전 같지 않다는 현실, 혹시나 넘어질까 조심스러워진 마음까지. 이 감정들은 어느 하나만으로 설명되기보다는 “나는 점점 느려지고 있다”는 해석으로 묶이기 쉽습니다.
하지만 노화의학 전문가들은 이 지점에서 시선을 조금 바꿔 보자고 제안합니다. 달리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면, 그것은 이미 중요한 신호라는 것입니다. 의욕과 호기심이 남아 있고, 몸을 다시 움직이고 싶다는 동기가 살아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노화는 의욕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에 가까우며, “나도 달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한 아직 충분한 생명력이 남아 있다고 보는 것이죠.
문제는 마음이 아니라 방법입니다. 젊은이처럼 한 번에 속도를 끌어올리려 하면 관절과 심장이 버티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평생 걷기만 하면서 ‘나는 늙었으니까’라고 스스로를 규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전문가들이 권하는 방식은, 나이에 맞는 속도와 회복력을 기준으로 한 새로운 운동 루틴을 만드는 것입니다.
시니어도 달릴 수 있을까 – 전문가들이 제안하는 현실적인 방법
운동처방 전문가들은 “시니어도 충분히 달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다만 목표를 ‘빠르게’가 아니라 ‘안전하게, 그리고 꾸준하게’에 두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권하는 방법은 걷기와 달리기를 섞는 짧은 인터벌입니다.
예를 들어 처음에는 5분을 천천히 걷고, 30초에서 1분 정도만 가볍게 뛰어보는 것입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기 전에 멈추고 다시 걷습니다. 이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 시간이 지나면서 “달리는 구간”을 조금씩 늘릴 수 있습니다. 이때 중요한 기준은 속도가 아니라 숨과 심장, 그리고 다음 날 몸의 느낌입니다.
전문의들은 특히 심박수와 관절 상태를 강조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무릎과 발목은 충격에 예민해지고, 심장은 과부하에 취약해집니다. 그래서 쿠션이 좋은 운동화를 신고 평지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계단이나 내리막길, 딱딱한 도로 위에서 무리하게 뛰는 것은 피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포인트는 회복입니다. 젊을 때는 연속으로 며칠을 달려도 큰 무리가 없었다면, 시니어에게는 “운동한 다음 날에 얼마나 개운한가”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전문가들은 주 2~3회, 하루 걸러 한 번 정도의 가벼운 러닝을 권합니다. 나머지 날에는 스트레칭과 가벼운 걷기로 몸을 풀어주는 것이 좋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조금씩 몸의 리듬을 찾아가다 보면 의외의 변화가 생깁니다. 거울 속 모습이 달라지기 전에 먼저 달라지는 것은 마음입니다. “나는 아직 할 수 있다”는 감각, 예전의 나와 완전히 멀어진 것이 아니라는 안도감, 그리고 앞으로의 시간을 스스로 설계하고 있다는 자존감이 서서히 회복됩니다.
달리는 시대, 걸어가는 나 –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마음의 방향
달리는 시대에 걷고 있다는 사실은 때로 마음을 씁쓸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조금만 다르게 보면, 걷는다는 것은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다만 남들보다 천천히, 나에게 맞는 리듬으로 이동하고 있을 뿐입니다.
러닝 열풍 속에서 시니어에게 필요한 것은 젊은이와 똑같은 속도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나에게 맞는 속도를 찾는 용기”일 수 있습니다. 걷기만 하던 일상에 아주 잠깐의 가벼운 러닝을 더해보는 선택, 혹은 아직은 뛰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한 번 정도는 달려보고 싶다’는 마음을 인정해 주는 태도 말입니다.
산책길에서 달리는 청년을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은 결코 패배감만은 아닙니다. 그 안에는 여전히 살아 있고 싶다는 욕망, 몸과 마음을 조금이라도 더 쓰고 싶다는 바람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그 마음이 남아 있는 한, 시니어 역시 자신의 방식으로 다시 달릴 수 있습니다.
오늘 산책을 나가게 된다면, 한 번쯤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어떨까요. 나는 지금 어떤 속도로 살아가고 싶은지, 그리고 내 몸이 허락하는 한도 안에서 어디까지 한 발 더 나아가 보고 싶은지. 답을 서두를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그 질문을 품고 걷는 순간, 이미 작은 변화는 시작되고 있을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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