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권리로 본 나이들어가는 나의 삶-도움받는 노인이 아니라, 자존심을 가진 시민으로

권리로 본 나이 들어가는 나의 삶 -
도움받는 노인이 아니라,자존심을 가진 시민으로

우리는 너무 오래 “나이 들면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들어왔습니다.
조금 아파도, 조금 불편해도, 설명을 못 알아들어도, 창구에서 무시를 당해도,
“나도 늙었으니 참아야지”, “귀찮게 하면 안 되지”라며 스스로 줄이고 물러났습니다.

그 사이에 익숙해진 말이 있습니다.
“취약계층”, “디지털 약자”, “돌봄 대상”, “보호가 필요한 노인”.

물론 도움이 필요한 순간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들이 반복될수록, 나이 들어가는 사람은
도움을 “받는 쪽”, 설명을 “듣기만 하는 쪽”,
결정에서 “한 발 비켜나야 하는 쪽”으로 자리 잡아 버립니다.

이 연재는 그 자리를 바꾸려는 시도입니다.

이제는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나는 평생 세금을 내고, 일을 하고, 가족과 사회를 책임지며 살아왔다.
그렇다면 나이 들어가는 지금, 최소한 무엇을 요구해도 되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연민’이나 ‘미담’이 아니라 권리의 언어를 꺼내 보려 합니다.

1. 왜 ‘권리’의 언어로 나이 듦을 말하는가

권리는 거창한 구호가 아닙니다.
“나에게 이 정도는 당연히 보장되어야 한다”는 최소 기준입니다.

나이 들어가는 삶을 권리로 본다는 말은,
무엇이든 가져야 한다는 욕심이 아니라,
“이 선 아래로는 더 이상 내려가지 않겠다”는 합리적인 선언입니다.

다시 묻습니다.

  • 위험한 집에서, 넘어질까 두려워 벌벌 떨며 사는 게 당연한가?
  • 화면 글씨를 읽을 수 없는 앱 앞에서, 창구도 사라진 채 쫓겨나듯 돌아서는 게 자연스러운가?
  • “나이도 있는데 이 정도 아픔은 참고 살아야지”라는 말로, 필요한 진료와 설명을 포기해야 하는가?
  • 버스 계단이 두려워 집 안에 머무는 것을, 본인이 선택한 삶이라 부를 수 있는가?
  • 돌봄과 요양, 호스피스를 선택하면서 “가족에게 미안해서”만 반복해야 하는가?
  • 일터에서, 병원에서, 동네 회의에서, 설명만 듣고 결정에는 빠져 있는 것이 당연한가?

이 질문들에 솔직히 대답해 보면,
우리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기준을 말해 본 적이 없어서 이렇게 되어온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 연재는,
“도와달라”는 호소보다 먼저
“이 정도는 요구하겠다”는 기준을 함께 세우는 작업이 될 것입니다.

2. 이 시리즈가 약속하는 네 가지

앞으로 이어질 7편의 이야기는, 다음 네 가지 약속을 지키며 씁니다.

첫째, 불쌍해서 돕는다는 말은 쓰지 않습니다.
나이 들어가는 사람을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긴 시간을 버텨온 시민이자, 경험과 판단을 가진 주체로 놓고 씁니다.

둘째, 어려운 말 앞에서는 반드시 풀어서 설명합니다.
에이지테크, 공공임대, 장기요양, 세컨드 오피니언, 호스피스, 디지털 길잡이 같은 말들은
그때그때 짧게, 그러나 정확히 풀이합니다.
“당신이 몰라서 문제가 된다”는 식으로 돌리지 않습니다.

셋째, 말로만 위로하지 않습니다.
각 편의 끝에는 항상 묻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3~5개의 구체적인 행동을 제안합니다.
해볼 수 있는 전화 한 통, 창구 하나, 질문 한 줄, 거절 한 마디까지 적어두겠습니다.

넷째, ‘배우세요’가 아니라 ‘묻고, 요구하고, 거절하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로 끝냅니다.
“열심히 따라오라”는 숙제를 주는 대신,
이미 가진 권리를 확인하고, 필요할 때 사용하도록 돕는 쪽을 택합니다.

3. 앞으로 다룰 일곱 가지 권리의 자리

이 연재는 다음 일곱 가지 축을 따라갑니다.

디지털 앞에서 작아지지 않을 권리
앱·키오스크·온라인 서비스 앞에서 “나는 원래 몰라”로 주저앉지 않고,
설명을 요구하고, 안전하게 도움을 받고, 이해되지 않으면 동의하지 않을 권리.

버티는 집이 아니라 요구할 수 있는 집
고시원, 낡은 빌라, 엘리베이터 없는 집, 위험한 구조를
“사는 대로 산다”로 넘기지 않고,
최소한의 안전·접근성·연결성을 요구할 주거권.

아픈 몸을 참고만 살지 않을 권리
“나이도 있는데”라는 한마디에 묻히지 않고,
설명을 들을 권리, 다른 의견을 구할 권리, 동의서 내용을 이해할 권리.

집 안에 갇히지 않을 권리
버스 계단, 줄어드는 마을버스, 택시 승차 거부를 개인 체력 문제로 돌리지 않고,
병원과 시장, 공공시설에 안전하게 오갈 수 있는 이동권.

돌봄을 빚지지 않을 권리
요양, 방문돌봄, 호스피스를 택할 때
“가족·국가에 미안해서”가 아니라
기준과 정보를 가지고 선택할 권리.

일할 권리, 멈출 권리
“일 시켜줘서 고맙다”에 묶이지 않고,
안전한 조건에서 일할 권리와, 건강이 허락하지 않을 때 멈출 권리.

설명 대상이 아니라 결정 주체로 살 권리
아파트 회의, 병원 치료, 재산과 유산, 가족 문제에서
“어르신, 그냥 이렇게 하시면 돼요”로 끝나지 않고,
직접 묻고, 결정하고, 존중받을 권리.

각 편은 이 권리를 하나씩 꺼내어,
현실에서 어떻게 지워지고 있는지,
어떤 말과 태도가 그것을 가리고 있는지,
그리고 오늘 당장 무엇을 해 볼 수 있는지 살펴볼 것입니다.

4. 이 글을 읽는 지금, 딱 세 가지만 기억했으면 합니다

첫째. “나이 들었으니 감수해야 한다”는 말은 기준이 아니라 습관입니다.
습관은 바꿀 수 있습니다.

둘째. 설명을 요구하고, 선택지를 물어보고, 동의하지 않을 권리가 이미 당신에게 있습니다.
새로 생기는 게 아니라, 잊고 지내던 것을 다시 꺼내는 일입니다.

셋째. 혼자 싸우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각 편에서 구체적인 문장, 질문, 창구를 함께 찾겠습니다.
“이 말은 해도 된다”, “이 도움은 요구해도 된다”는 실제 도구를 함께 적어갈 것입니다.

이 시리즈는 누군가를 대신해서 화를 내 주는 글이 아니라,
나이 들어가는 우리가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 보는 연습입니다.

“나는 불쌍해서 도와줘야 할 대상이 아니라,
기준을 말할 수 있는 시민이다.”

이제 1편부터, 그 기준을 하나씩 함께 세워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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