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과 시니어의 일자리는 얼마나 겹치는가

청년과 시니어의 일자리는 얼마나 겹치는가

“정년을 늘리면 청년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말은 자연스럽게 “청년과 시니어가 같은 자리를 두고 경쟁하고 있다”는 그림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래서 정년연장 논의가 나올 때마다 세대 갈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함께 커집니다. 하지만 실제 노동시장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청년과 시니어가 서 있는 자리, 맡고 있는 역할, 원하는 일자리의 종류가 서로 다른 층을 이루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 글에서는 “얼마나 겹치는가”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세대 간 일자리 구조를 차분히 살펴보려 합니다.

1편에서 우리는 “할아버지의 일자리가 손자의 밥그릇을 빼앗는가”라는 문장이 얼마나 단순화된 표현인지, 그리고 청년 취업난의 원인이 꼭 정년연장만은 아니라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2편에서는 한 걸음 더 들어가, 청년이 주로 진입하는 영역과 시니어가 오래 머무는 영역이 실제로 어디에서 겹치고, 어디에서 갈라지는지를 구조적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서로의 자리를 빼앗는 관계”에서 “서로 다른 역할을 맡을 수 있는 관계”로 관점을 옮기는 기초를 마련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청년이 선호하는 일자리와 시니어가 머무는 일자리는 다르다

먼저 가장 단순한 질문부터 던져볼 수 있습니다. 청년이 실제로 들어가고 싶어 하는 일자리와, 시니어가 오래 근무하는 일자리가 같은가? 많은 청년은 “정규직·대기업·공공기관·전문직”을 선호합니다. 성과가 분명하고 복지가 안정된 직장, 경력 개발이 가능한 직장, 이직이 유리한 직장을 찾습니다. 반면 상당수 시니어는 오랜 조직 생활 끝에 특정 회사·기관 안에서 경험을 쌓아온 경우가 많고, 현장 관리·조정·후배 지도·안전·품질 관리 등 조직 내부에서만 생기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또한 시니어가 은퇴 후 다시 일자리를 찾는다면, 주로 지역 사회에서 가능한 돌봄·경비·운전·서비스·단시간 업무 등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청년에게는 “중간 단계”에 불과한 일자리일 수 있지만, 시니어에게는 소득과 사회적 연결을 동시에 지켜주는 중요한 역할입니다. 겉으로는 ‘노동시장’이라는 말 한 단어에 묶여 있어도, 청년과 시니어가 기대하는 일자리는 실제로 다른 층에서 움직이고 있는 셈입니다.

겹치는 구간이 있는 곳과 거의 겹치지 않는 곳

물론 두 세대의 일자리가 전혀 겹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정원이 고정된 일부 조직, 특히 공공기관·공기업·일부 대기업의 정규직 직군에서는 세대 간 긴장이 상대적으로 강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승진 구조가 좁고, 한 번 진입하면 오랫동안 머무르는 직군일수록 “위가 꽉 막혀 있다”는 체감이 더 큽니다. 이런 영역에서는 정년연장이 실제 채용 규모에 영향을 줄 가능성을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노동시장 전체를 이런 사례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많은 중소기업, 서비스업, 돌봄·요양, 운송, 지역 일자리, 신생 산업에서는 “사람을 못 구해서” 애를 먹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여기에서는 청년과 시니어가 오히려 함께 채워야 할 빈자리가 많습니다. 경험이 중요한 역할은 시니어가, 체력과 속도·디지털 감각이 중요한 역할은 청년이 맡을 수 있습니다. 이런 영역에서 세대 간 일자리는 경쟁보다는 보완 관계에 가까운 경우가 많습니다.

노동시장은 한 줄이 아니라 여러 층으로 쌓인 구조다

흔히 노동시장을 떠올릴 때, 많은 사람들은 “하나의 줄에 세대가 세워져 있는 그림”을 떠올립니다. 맨 앞에는 오랫동안 일한 시니어가 있고, 뒤에는 막 사회에 나온 청년들이 바짝 붙어 서 있는 모습입니다. 이 줄의 앞이 움직이지 않으면 뒤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하지만 실제 노동시장은 “한 줄”이 아니라, 산업과 직무·지역·직급에 따라 여러 층으로 나뉜 구조에 더 가깝습니다.

예를 들어 제조업 안에서도 생산 라인·기술직·연구개발·관리·지원 등으로 역할이 나뉘고, 서비스업도 기획·운영·현장·관리·교육 등으로 쪼개집니다. 같은 회사 안에서조차 청년이 진입하는 통로와 시니어가 머무르는 자리가 다른 레벨에 위치할 수 있습니다. 이때 정년연장은 “한 줄 전체의 속도를 늦추는 요인”이라기보다, 특정 층의 이동 속도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청년에게 중요한 것은 ‘자리가 비는 것’보다 ‘어떤 자리가 생기는가’이다

청년 관점에서 보면, 일자리 문제는 단순히 “누가 물러나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자리가 새로 만들어지고 있는가”입니다. 신산업·디지털 전환·고령사회·돌봄 확대 등 사회 구조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직무가 생기고, 기존 직무는 사라지거나 성격이 달라집니다. 이 과정에서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사라지는 일을 붙잡고 늘어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 열리는 영역을 찾아갈 수 있는 정보·교육·경로입니다.

시니어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년이 늘어난다고 해서 지금 하던 일을 그대로 끝까지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산업 구조가 바뀌면, 시니어 역시 역할을 바꾸거나 새로운 일을 배워야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청년과 시니어 모두에게 중요한 것은 “누가 비켜주는가”가 아니라, “변화하는 구조에서 어떤 역할을 준비하느냐”입니다. 세대 갈등 프레임에 갇히면, 이 더 중요한 질문을 놓치게 됩니다.

서로의 일자리를 빼앗는 관계인가, 역할을 나누는 관계인가

청년과 시니어의 일자리가 겹치는 구간이 전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어느 조직에서든 승진과 채용이 동시에 움직이는 자리에서는 세대 간 긴장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이 긴장을 “서로를 밀어내야 하는 자리 싸움”으로만 볼 것인지, “각자의 강점을 살릴 수 있도록 역할을 다시 나누는 과정”으로 볼 것인지입니다.

경험과 현장 감각, 조직 이해도, 사람을 다루는 힘은 시니어의 소중한 자산입니다. 반대로 새로운 기술을 빠르게 익히고, 디지털 환경에 자연스럽게 적응하는 능력은 청년 세대의 강점입니다. 이 두 가지를 섞어 쓰는 구조를 만들면, 정년연장은 세대 갈등을 키우는 장치가 아니라 노동력 부족 시대에 필요한 지렛대가 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제도가 아니라, 제도를 어떻게 설계하고 운영하느냐입니다.

정년연장을 둘러싼 논의,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가

결국 “청년과 시니어의 일자리는 얼마나 겹치는가”라는 질문은, 단순히 숫자를 세는 일이 아니라 정년연장 논의의 초점을 어디에 둘 것인가와 연결됩니다. 정년을 길게 가져갈 것인지,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는 중요한 논의지만, 그보다 먼저 “세대가 서로 어떤 역할을 맡으며 함께 일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역할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년만 길어지면, 세대 간 불안과 오해가 쌓이기 쉽습니다.

이 글이 제안하고 싶은 방향은 단순합니다. 청년과 시니어의 일자리가 겹치는 구간에서는 “공정한 기회와 투명한 기준”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고, 겹치지 않는 구간에서는 “함께 채워야 할 빈자리와 새로운 역할”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두 영역 모두에서, 세대 탓이 아니라 제도와 구조를 함께 손보는 시각이 필요합니다. 오늘의 노동시장에서 청년과 시니어는 경쟁자이면서도 동시에 동료입니다.

다음 질문은 ‘정년 65세 시대,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이다

2편에서는 청년과 시니어의 일자리가 실제로 얼마나 겹치는지, 어디에서 갈등이 생기고 어디에서 보완 관계가 되는지 구조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남은 질문은 “그렇다면 정년이 65세로 길어지는 시대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입니다. 각 세대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기업과 정책은 어떤 방향으로 변해야 하는지를 함께 보지 않으면, 정년 논의는 늘 같은 자리에서 맴돌게 됩니다.

3편에서는 정년 65세 시대를 전제로, 시니어·청년·기업·정책이 각각 어떤 역할을 나눠 맡을 수 있을지, 그리고 서로에게 덜 미안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어떤 기준이 필요할지를 차분히 정리해 보겠습니다. 세대가 서로를 밀어내지 않으면서도 함께 오래 일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적인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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