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 없는 나이, 그래도 삶의 주인은 나 자신이다 | 케어시니어

피할 수 없는 나이, 그래도 삶의 주인은 나자신이다

피할 수 없는 나이, 그래도 삶의 주인은 나자신이다

한 해의 끝에 다가서면 이런 말이 자주 들립니다. “올해도 벌써 다 갔네.” “또 한 살 더 먹네, 벌써 싫다.”

솔직히 말해 나이를 먹는다는 일은 마냥 반가운 소식이 아닙니다. 몸은 예전 같지 않고, 세상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새해를 떠올리면 설렘보다 “앞으로 남은 시간”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 순간도 찾아옵니다. 그렇다고 나이 듦을 부정할 수도, 피해 갈 수도 없습니다. 나이는 우리의 동의와 상관없이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쌓여갑니다.

그래서 질문은 이렇게 바뀝니다. “나이를 먹는 걸 멈출 수 없다면, 나는 이 나이를 어떤 태도로 받아들이고, 여전히 무엇을 선택하며 살 것인가.”

이 글은 나이 듦을 예쁘게 포장하려는 글이 아닙니다. 나이가 들며 겪게 되는 상실과 불편함을 인정하면서도, 그 안에서 여전히 내 몫으로 남아 있는 것들을 함께 짚어보려는 시도입니다.

1. 나이는 멈출 수 없고, 인정은 선택이다

나이가 드는 것과 늙어간다는 것은 비슷해 보이지만 조금 다릅니다. 나이는 주민등록증에 찍히는 숫자이고, 늙어감은 그 숫자를 대하는 나의 태도와 방식에 더 가깝습니다.

많은 이들이 “마음은 아직 30대 같은데, 나이만 먹는다”고 말합니다. 그 말에는 두 가지 마음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한쪽에는 “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솔직한 감각이, 다른 한쪽에는 “이 나이에 이 정도면 부족한 것 아닐까” 하는 서운함이 자리합니다.

우리가 먼저 해볼 수 있는 선택은 나이 듦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 나는 지금 나이 들어가고 있다. 이것은 사실이다.”라고 인정하는 일입니다. 인정은 체념이 아니라, 더 이상 거부하느라 힘을 소진하지 않겠다는 조용한 선언입니다. 이 출발점이 있어야 그다음에 무엇을 고를지에 대한 대화가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2. 줄어드는 것만 볼 것인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을 볼 것인가

나이가 들면 분명 줄어드는 것들이 있습니다. 체력, 회복 속도, 눈과 관절, 혈관 기능, 일터에서의 자리, 사람들의 기대, 사회가 맡겨주던 역할까지 서서히 줄어듭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이제 뭘 더 할 수 있을까?”보다 “이제 뭘 내려놓아야 하지?”라는 질문이 더 먼저 떠오릅니다.

이 질문은 슬퍼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주 성숙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내려놓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면, 정작 지키고 싶은 것을 제대로 붙잡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가지지 못한 것보다 여전히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세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입니다.

· 여전히 나를 걱정해주는 몇 사람의 얼굴
· 내 안을 조용히 지탱해주는 작은 습관 하나 (아침 스트레칭, 짧은 산책, 따뜻한 차 한 잔 등)
· 경험에서 나온 한마디 말로 누군가에게 건넬 수 있는 조언과 위로
· 실패와 후회, 선택과 감당을 통과하며 만들어진 나만의 기준

줄어드는 것만 바라보면 삶은 금세 초라해집니다. 그러나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을 보는 눈을 가지면, 나이가 들어도 삶의 무게는 다른 의미로 단단해집니다. 이것이 나이가 쉽게 빼앗을 수 없는 영역이자, 우리가 훈련할 수 있는 시선입니다.

3. 나이가 줄 수 없는 것 ① 내 몸을 대하는 나의 태도

나이가 들수록 몸은 더 많은 관리를 요구합니다. 예전처럼 밤을 새워도 멀쩡할 수 없고, 한 번 다치면 회복하는 데 더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이 나이에 뭘 새로 해, 그냥 나이 드는 대로 두자”라는 말이 쉽게 나옵니다.

하지만 몸이 예전 같지 않다고 해서, 내가 나를 대하는 태도까지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이렇게 바꿔볼 수 있습니다.

· “이 나이에 운동을 새로 시작해도 소용없다”가 아니라, “이 나이라서 더 무리하지 않는 운동을 하나 고르겠다.”
· “예전처럼 먹지 못하니 재미없다”가 아니라, “이제는 속이 편한 음식을 스스로 골라주는 나를 만들겠다.”

기준을 ‘젊었을 때처럼’에 두면 실패감이 따라붙습니다. 그러나 기준을 ‘지금의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선택’으로 옮겨오면,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할 수 있는 선택이 분명히 보입니다. 나이는 멈추지 않지만, 내 몸을 대하는 표현은 지금 이 순간에도 바꿀 수 있습니다.

4. 나이가 줄 수 없는 것 ② 감정에 이름 붙이는 힘

젊을 때의 감정은 올라오는 대로 바로 튀어나오곤 했습니다. 화가 나면 곧바로 말이 거칠어지고, 서운하면 문을 쾅 닫아버리고, 왜 그랬는지 스스로도 잘 모른 채 지나가던 때가 많았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감정은 오히려 더 복잡해지고 오래 남습니다. 서운함, 외로움, 분노, 허무함, 안도감, 고마움이 한꺼번에 섞여 올라오는 순간도 있습니다. 그래서 주변에서는 “나이 들수록 예민해진다”고 쉽게 말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일지도 모릅니다. 기억과 책임, 지나온 시간이 함께 달라붙어 감정의 결이 더 촘촘해지는 것일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든 지금 우리가 새로 할 수 있는 선택은, 감정을 억누르거나 폭발시키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 이름을 붙여보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 화가 났다”에서 멈추지 않고,
“나는 지금 무시당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화가 난 것 같다.”
“나는 지금 외롭다”에서 멈추지 않고,
“내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줄어들어서 더 외롭다.”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순간, 그 감정은 나를 집어삼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다룰 수 있는 무언가로 바뀝니다. 나이가 준 큰 선물 중 하나는, 감정을 조금 더 천천히, 깊게 바라볼 수 있는 능력입니다. 이 능력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여전히 우리의 선택입니다.

5. 나이가 줄 수 없는 것 ③ 시간과 관계를 편집하는 권리

젊을 때는 해야 할 일, 만나야 할 사람, 가야 할 곳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정작 나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틈이 부족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다른 종류의 자유를 조금씩 얻게 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자유가 아니라,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을 덜어낼 수 있는 자유입니다.

이제는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 나를 반복해서 상처 주는 관계를 계속 붙잡고 있어야 하는지
· 몸과 마음을 소모시키는 자리들을 계속 지켜야 하는지
· 나답지 않은 역할을 억지로 떠맡아야 하는지

관계를 함부로 끊어내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만 “이제는 남은 시간을 좀 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쓰고 싶다”는 기준을 세워도 된다는 뜻입니다. 나이는 멈추지 않지만, 내 시간을 어디에, 누구에게, 어떻게 쓸지는 끝까지 내 몫입니다.

6. 한 살 더 먹는 새해를 앞두고, 지금 할 수 있는 작은 선택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봅니다. “한 살 더 먹는다는 것, 그게 내게 어떤 의미인가?” 이 질문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다만, 내년의 내가 올해의 나와 조금이라도 달라지길 바란다면, 현실적인 선택을 몇 가지는 정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내년 나이에 대한 나만의 문장을 하나 적어두기입니다. “내년 ○○살의 나는, 몸을 더 아끼고, 화를 덜 끌어안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더 많이 나누겠다.” 이렇게 스스로 문장을 만들어두면 숫자로만 보이던 나이가, 태도와 함께 엮인 하나의 그림으로 바뀝니다.

둘째, ‘그만둬도 되는 것’ 한 가지를 정하고 실제로 내려놓기입니다. 억지로 유지해온 모임, 나를 소진시키는 역할, 나를 계속 깎아내리는 생각 습관 중 하나를 골라 “이건 이제 그만하겠다”라고 스스로에게 선언해보는 것입니다. 버리면서 비워진 자리에, 새로운 여유와 기쁨이 들어올 공간이 생깁니다.

셋째, ‘계속 이어가고 싶은 관계’ 한 사람에게 먼저 연락해보기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새 인연도 소중하지만, 이미 알고 지내온 몇 사람의 존재가 훨씬 크게 느껴집니다. 올 한 해 고마웠던 사람, 내년에도 소식을 나누고 싶은 사람에게 짧은 안부와 진심을 건네보는 것. 그 한 번의 연락이 내년의 외로움을 조금 덜어줄 수도 있습니다.

7. 나이는 계속 늘어난다, 그래서 오늘의 선택이 더 중요하다

나이를 멈추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속도로 늙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늘어날수록 더 무기력해져야 한다는 법도, 나이가 들면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 없다는 법도, 어느 나이 이후에는 성장을 말하면 안 된다는 규칙도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나이 든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고,
그 안에서 여전히 내게 남아 있는 선택의 영역을 찾고,
오늘의 작은 선택을 내일의 나에게 선물처럼 건네는 것.

한 살 더 먹는다는 일이 마냥 기쁘지 않은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 솔직함을 인정한 뒤에, 그래도 이 나이의 나를 존중하는 선택을 하루에 하나씩 쌓아가는 것. 어쩌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도 품위 있는 나이 듦의 방식은 그런 삶일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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