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지감수성을 아는 시니어가 품위를 지킨다 – ‘옛날엔 괜찮았다’는 말의 진짜 의미
나이가 들수록 이런 말을 자주 듣게 됩니다. “그 정도 농담은 우리 때는 다 웃고 넘겼어.”, “옛날에는 자연스러웠던 표현인데 이제는 왜 이렇게 예민한 거야?”라는 말들입니다. 하지만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그때도 분명 상처받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자연스러웠던 표현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 당시에도 대단히 불쾌하게 느끼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다만 피해자가 오히려 부끄러움을 떠안도록 강요받던 시절이라, 아무도 말하지 못했던 것뿐입니다. 누군가의 외모를 함부로 평가하고, 성별을 앞세워 농담을 던지고, 마음대로 몸을 접촉하는 행동은 그때도 누군가에게는 모욕이었습니다.
이제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성인지감수성은 더 이상 특정 세대의 유행어가 아니라, 서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기본 교양이 되었습니다. 특히 시니어에게는 “옛날식 상식”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기준을 배우려는 태도가, 품위 있는 노년을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과거의 ‘당연함’은 사실 누군가에게는 모욕이었다
“그땐 다들 그랬어.”라는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일지 모릅니다. 사회 전체의 인식이 지금보다 훨씬 둔감했고, 불쾌함을 느끼는 사람의 입을 막는 분위기가 강했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의 침묵이 “아무도 불편하지 않았다”는 증거는 아닙니다. 회식 자리에서 특정 성별에게 술을 따르게 하거나, “남자는 원래 이래야지”, “여자는 참고 살아야지”라는 말들은 누군가에게 분명 깊은 상처로 남았습니다.
문제를 제기하는 순간 오히려 “분위기 망치는 사람”, “예민한 사람”이 되던 시절, 피해자는 자신의 감정을 숨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과거를 통째로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침묵 속에 숨은 상처를 인정하고 앞으로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방향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이 지점을 이해하는 시니어일수록 젊은 세대와의 대화가 훨씬 부드러워집니다.
성인지감수성이란 무엇인가 – 특정 성별 편들기가 아니다
성인지감수성은 어느 한쪽 성별을 편드는 태도가 아니라, 성별에 따른 차별·고정관념·불평등이 일상 속 말과 행동에 어떻게 스며 있는지 민감하게 알아차리는 능력입니다. “여자니까 당연히 이런 일을 해야 한다.”, “남자면 울지 말아야지.”와 같은 문장은 사람을 성별로만 규정하는 전형적인 표현입니다.
시니어에게 성인지감수성이 중요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세상의 기준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관습이 지금은 노골적인 차별로 보이기도 합니다. 이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면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상처 입히게 됩니다. 둘째, 시니어는 많은 관계의 중심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자녀, 며느리·사위, 손주, 동년배 모임, 봉사 활동 등에서 시니어의 말 한마디는 생각보다 큰 영향을 미칩니다.
시니어가 자주 하는 문제적 표현들
첫째, 외모와 몸에 대한 평가입니다. “살 좀 뺐네, 보기 좋다.”, “여자는 머리가 길어야지.”, “그 나이에 저런 옷을 입네.”와 같은 말은 칭찬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타인의 몸을 내 잣대로 평가하는 표현입니다. 특히 요즘 세대에게는 높은 확률로 불쾌하게 들립니다.
둘째, 성역할을 고정하는 말입니다. “남자가 그 정도도 못 벌면 어떡해.”, “여자는 원래 참고 사는 거야.”와 같은 문장은 상대의 선택과 삶을 좁은 틀 안에 가두는 말입니다. 단순한 옛날식 조언이 아니라, 자유를 제한하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집니다.
셋째, 과도한 스킨십과 거리 무시입니다. 어깨를 툭툭 치거나 허리를 잡고 자리를 비키게 하거나, 사진을 찍자며 몸을 붙이는 행동은 이제 “친근함”이 아니라 “동의 없는 접촉”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특히 직장, 공공장소, 공식 모임에서는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넷째, 친근함을 빌린 호칭 사용입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성별·나이만 보고 “아가씨, 학생, 누나, 형님”이라고 부르는 대신, 이름+님 또는 직함을 사용하는 편이 훨씬 안전합니다. 요즘 세대는 관계가 충분히 쌓이지 않은 상태에서의 과한 친근함을 부담스럽게 느낍니다.
다섯째, 성별을 앞세운 칭찬입니다. “여자인데도 운전을 잘하네.”, “남자치고 섬세하네.”라는 말은 칭찬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특정 성별은 원래 못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성인지감수성이 높은 사람은 이런 방식의 칭찬을 피하고, 성별과 무관하게 능력 자체를 평가합니다.
품위 있는 시니어를 위한 대화 원칙 다섯 가지
첫째, 성별 대신 개인을 기준으로 말하기입니다. “여자치고, 남자치고”라는 말만 빼도 상당수의 오해가 사라집니다. “여자라서 섬세해.” 대신 “일을 꼼꼼하게 하시네요.”라고 표현하면 됩니다.
둘째, 상대의 경계를 존중하기입니다. 스킨십, 별명, 농담은 “내가 괜찮은가”가 아니라 “상대가 괜찮은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조금 망설여진다면 하지 않는 쪽이 좋습니다.
셋째, 불편을 느낀 사람이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기입니다. “혹시 제가 불편하게 한 부분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라는 한 마디는 상대에게 큰 안도감을 줍니다. 나도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태도가 오히려 신뢰를 높입니다.
넷째, 모르는 개념은 묻고 배우기입니다. 성인지감수성, 젠더 이슈처럼 낯선 말들은 자녀나 젊은 사람들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면 됩니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라서.”라는 말로 선을 긋는 순간, 대화는 닫혀 버립니다.
다섯째, 잘못을 알면 담백하게 인정하기입니다. 의도와 상관없이 누군가가 불편했다고 말한다면, 변명보다 “그렇게 느끼셨다면 미안합니다.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품위 있습니다.
일상에서 성인지감수성을 키우는 작은 연습들
TV 드라마나 예능을 보면서 “저 장면에서 저 표현은 지금 기준으로도 괜찮을까?”를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감각이 달라집니다. 가족과 대화할 때 “요즘은 이런 말, 사람들이 어떻게 느껴?”라고 묻는 것도 좋은 연습입니다.
동년배 모임에서는 누군가의 외모나 사생활을 주제로 삼기보다, 최근에 읽은 책, 건강관리, 취미 이야기를 먼저 꺼내 보는 연습을 해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스스로 “내가 자주 쓰는 농담이나 표현 중에, 누군가를 성별로 묶어 말하는 것은 없을까?”를 떠올려 보고 조금씩 줄여 나가는 것만으로도 큰 변화가 생깁니다.
배울수록 더 자유로워지는 시니어의 품위
성인지감수성은 시니어를 위축시키는 개념이 아니라, 우리를 더 자유롭게 해주는 도구입니다. 상대에게 상처 주지 않으려는 감각은 결국 나의 평판을 지키고, 나의 관계를 보호합니다. “옛날에는 괜찮았다.”는 말 뒤에 감춰진 침묵을 인정하고, 이제는 그 침묵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태도 자체가 품위 있는 노년의 모습입니다.
나이 들수록 고집 대신 배움을 선택하는 시니어, 예전 방식만 고집하지 않고 지금의 기준을 함께 배우려는 사람이야말로 진짜 멋있는 어른입니다. 요즘 내가 하는 말과 행동 가운데, 혹시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것은 없는지 한 번쯤 돌아보고 싶어지시나요? 그 작은 질문에서 품위 있는 시니어의 변화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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