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의 마지막 집 3편 — 재택 돌봄과 커뮤니티의 힘
한때 ‘노년은 시설에서 지내야 안전하다’는 믿음이 당연하게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그 생각은 빠르게 바뀌고 있습니다. 이제 많은 시니어가 이렇게 말합니다. “가능하다면 마지막까지 내 집에서 살고 싶다.” 이 욕망은 단순한 정서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통제권을 스스로 손에 쥐고 싶다는 인간의 본능적 선택**입니다.
실제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자의 80% 이상이 “건강이 허락하는 한 자택에서 계속 살고 싶다”고 답했습니다. 이들은 병원이나 시설보다 ‘내 공간의 익숙함’이 주는 안정감을 더 큰 행복의 기준으로 여깁니다. 익숙한 냄새, 손에 익은 가구의 위치, 창문 너머의 풍경—이 모든 것은 기억이자, 정체성이며, 삶의 리듬입니다.
사회복지학의 연속성이론(Continuity Theory)은 노년의 행복은 기존의 생활 패턴을 유지할 때 가장 높다고 말합니다. 즉, ‘살던 곳에서 살아가는 것’이 곧 ‘나로 존재하는 방식’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재택 노년은 간단하지 않습니다. 건강 악화, 긴급상황, 돌봄 공백은 여전히 큰 위험 요인입니다. 그래서 최근 등장한 개념이 바로 재택 돌봄(Community Care)입니다.
재택 돌봄은 의료·요양·생활 지원 서비스를 통합해 노인이 **시설로 가지 않고도 지역 안에서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입니다. 일본의 ‘지역포괄케어시스템’이 대표적이며, 한국도 이 모델을 적극 도입 중입니다. 방문 간호, 식사 지원, 생활 안전관리, 응급 대응이 한 네트워크 안에서 연결되어 집이 곧 돌봄의 거점이 되는 구조입니다. 이 방식은 ‘돌봄의 제공자 중심’이 아니라 ‘생활자의 리듬 중심’이라는 점에서 시설 중심 복지와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이 변화는 인간관계의 회복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노년의 가장 큰 위험은 질병이 아니라 **고립**입니다. 집에 머물며 혼자 사는 노인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안전장치가 아니라 서로 돌보는 관계의 회로입니다. 서울 강동구의 ‘이웃케어플러스’ 모델은 1인 가구 노인과 지역 자원봉사자가 서로 연결되어 식사, 말벗, 건강 확인을 함께 나누는 사례로 주목받습니다. 이 구조는 복지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의 복원**입니다.
환경노년학을 연구한 박소정 교수(워싱턴대학교)는 “노년의 주거환경은 인간의 기능과 사회적 교류를 동시에 지탱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즉, 공간의 형태보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서 **관계가 지속되는 구조**입니다. 창문이 많고 복도가 넓은 집보다, 이웃의 발소리가 들리고 서로의 존재가 느껴지는 공간이 더 건강하다는 뜻입니다. 그녀의 말처럼, 주거는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인간관계의 연장입니다.
유범상 교수(한국방송통신대학교)는 여기에 시민권의 개념을 더합니다. 그는 “노년의 복지는 돌봄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돌봄을 선택할 수 있는 구조”라고 말합니다. 즉, 재택 돌봄은 국가의 서비스가 아니라 **시민의 권리**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합니다. 내가 사는 집에서 내가 원할 때 도움을 받는 것, 그것은 복지가 아니라 **자율의 제도화**입니다.
해외의 사례도 같은 흐름을 보입니다. 영국의 ‘Age-Friendly Community’ 정책은 고령자가 이웃과 자발적으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설계된 지역 시스템입니다. 미국의 ‘Village to Village Network’는 시니어 스스로가 회원이 되어 지역 서비스(차량 지원, 돌봄, 문화활동)를 조직합니다. 이들은 말합니다. “우리는 고객이 아니라, 함께 사는 시민이다.” 그 철학은 곧 노년의 집이 공동체의 일부가 되는 방식으로 이어집니다.
결국 ‘집에 머무는 노년’은 고립의 상징이 아니라 회복의 구조입니다. 그곳에서 사람은 스스로의 속도대로 하루를 만들고, 필요한 때에는 사회적 지원을 연결하며, 삶의 균형을 다시 세워갑니다. 재택 돌봄과 커뮤니티의 결합은 단지 복지의 효율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으로 남을 수 있는 사회적 기술입니다.
노년의 집은 보호시설이 아니라, 내가 살아온 이야기가 천천히 이어지는 삶의 무대입니다. 그 무대 위에서 우리는 더 이상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서로를 비추는 관계의 주체로 서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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