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를 두고 싶은데 죄책감이 들 때 – 마음의 자유를 회복하는 법
어떤 관계에서는 이렇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솔직히 조금 멀어지고 싶다. 지금처럼 자주 만나고, 자주 연락하고, 마음을 다 써 주는 건 내 힘에 부친다.” 그런데 막상 한 발 물러서려 하면 마음속에서 바로 다른 목소리가 올라옵니다. “그래도 그동안 나한테 잘해 준 적도 있는데”, “이렇게 거리를 두면 내가 너무 차가운 사람 아닌가?”, “혹시 내가 나쁜 사람이 되는 건 아닐까?”
그래서 몸과 마음은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합니다. 몸은 분명히 “조금 덜 만나고 싶다”고 말하는데, 마음은 “그래도 참자, 그래도 받아 주자”고 말립니다. 그 사이에서 가장 먼저 지치는 쪽은 언제나 “조금 더 참는 사람”입니다. 결국 관계도 힘든데, 거리를 두려는 나 자신에게도 미안해져서 마음이 이중으로 무거워집니다.
특히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 “관계는 어떻게든 유지해야 한다”, “가족끼리는, 오래된 인연끼리는 끊으면 안 된다” 같은 믿음을 가지고 살아온 사람일수록, 거리두기를 떠올리는 것 자체가 죄책감과 바로 연결되기도 합니다. “나만 편하자고 너무 이기적인 선택을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따라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1편부터 7편까지 우리가 계속 확인해 온 것처럼, 관계 속에서 가장 먼저 지켜야 할 사람은 늘 “나 자신의 마음”입니다. 이 8편에서는 특히 이런 문장을 중심에 두고 이야기를 이어가고자 합니다. 거리두기는 버림이 아니라 자기보호다. 죄책감은 사실 ‘착한 사람 컴플렉스’에서 온다. 이 관점을 기준으로, 죄책감에 눌리지 않으면서도 건강하게 거리를 두는 방법을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왜 거리두기만 떠올려도 이렇게 죄책감이 밀려올까
거리를 두고 싶어지는 관계에는 대개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만날 때마다 내 이야기보다 상대의 하소연을 더 오래 들어줘야 하거나, 상대의 기분에 내가 늘 맞춰야 하거나, 지나치게 요구가 많고 예민해서 “조금만 잘못해도 서운해할 것 같은” 사람과의 관계일 때입니다. 만남이 끝난 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몸은 집에 왔는데 마음은 온통 탈진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게 거리를 두지 못하는 이유는, 상대의 행동만이 아니라 내 마음 안의 “규칙”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규칙들입니다. “상대가 힘들어 보이면, 웬만하면 들어줘야 한다.” “나 때문에 상처받는 사람이 생기면 안 된다.” “정이 한 번 든 사람과는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 이런 규칙들이 너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으면, 한 발 물러서려는 순간 곧바로 죄책감이 나를 붙잡습니다.
이 죄책감의 중심에는 종종 “착한 사람 컴플렉스”가 있습니다. 항상 배려해야 하고, 이해해야 하고, 맞춰야 하고, “좋은 사람”으로 남아야 한다는 압박입니다. 이 컴플렉스는 나를 나쁘게 만들지는 않지만, 대신 나를 “나 자신에게 더 가혹한 사람”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문제입니다. 상대의 힘듦은 세심히 살펴주면서, 정작 내 마음의 피로와 안전은 뒷순위로 밀려나 있기 쉽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한 번 구분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정말로 잘못하고 있어서 느끼는 죄책감인지” “아무도 나를 탓하지 않는데, ‘착한 사람’이라는 기준 때문에 스스로를 탓하고 있는 죄책감인지” 후자의 경우라면, 지금 필요한 것은 더 참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기준을 조정하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마음의 자유를 회복하는 거리두기 연습 3가지
거리를 둔다는 것은 반드시 관계를 끊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견딜 수 있는 만큼의 안전거리를 다시 그리는 일”입니다. 아래의 세 가지 연습은, 죄책감에 덜 휘둘리면서도 나를 보호하는 거리두기를 시작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1) 내 마음의 ‘안전거리 지도’ 그려 보기
생각만으로는 늘 헷갈리기 때문에, 종이에 직접 적어 보는 것이 좋습니다. 떠오르는 사람 몇 명을 적어 놓고, 옆에 이렇게 나눠 봅니다.
“자주 만나도 편안한 사람”
“조금 간격을 두면 더 편안한 사람”
“필요한 순간에만 소식을 나누어도 되는 사람”
이 작업을 하다 보면, “지금 나는 이 관계를 어느 칸에 놓고 싶은가”가 조금 더 분명해집니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는 거의 매주 만나던 사람이라도, 실제로는 “두세 달에 한 번 근황만 나눠도 충분한 관계”로 옮겨두고 싶은 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나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 주는 것입니다. “내 마음의 안전거리를 조정하는 것은 이기적인 선택이 아니라, 나와 상대 모두를 위한 정리일 수 있다.”
2) 죄책감이 올라올 때, 문장 바꾸기 연습
거리를 두려는 생각만 떠올려도 곧바로 “내가 너무한가?”라는 죄책감이 올라온다면, 그때마다 내 안의 문장을 조금씩 바꾸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이런 문장들로 바꾸어 볼 수 있습니다.
“나는 이 사람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거리를 두려는 거야.” “거리를 둔다고 해서, 지금까지의 시간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무너지지 않을 만큼의 거리를 두는 것은, 오히려 관계를 오래 보기 위한 선택일 수 있다.”
이렇게 내적 언어를 바꾸어 주면, 죄책감의 크기가 조금씩 줄어듭니다. “거리두기는 버림이 아니라 자기보호다. 죄책감은 사실 ‘착한 사람 컴플렉스’에서 온다.”는 문장을 마음속에서 여러 번 되뇌어 보셔도 좋습니다. 나를 탓하는 죄책감에서, 나를 보호하는 책임감 쪽으로 중심을 조금씩 옮기는 과정입니다.
3) 행동은 ‘단절’이 아니라 ‘조정’으로 시작하기
마음이 너무 지쳐 있을수록, 확 끊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쉽습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갑작스러운 단절은 이후에 더 큰 죄책감과 후회를 남기기도 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단절”이 아니라 “조정”으로 시작하는 편이 좋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연락 빈도를 절반으로 줄여 본다.” “한 번 만나던 시간을 조금 줄여 본다.” “만나는 자리를, 나 혼자 부담을 크게 느끼지 않는 환경으로 바꾸어 본다.” 이렇게 조금씩 조정해 보면, 내 마음이 어느 지점에서 덜 지치는지 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이 경험이 쌓일수록, “나는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감각도 함께 자라납니다.
거리를 두고 싶을 때, 마음을 더 힘들게 만드는 하지 말아야 할 3가지
죄책감에 휩싸여 있을수록, 우리는 스스로를 더 몰아붙이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쉽습니다. 아래의 세 가지 패턴은 의식적으로 멈추고 싶은 반응들입니다.
1) 마음은 이미 지쳤는데, 겉으로만 계속 ‘좋은 사람 역할’ 유지하기
속으로는 이미 힘들어서 한 발 물러서고 싶은데, 겉으로는 예전과 똑같이 웃으며 챙기고, 들어주고, 맞춰주는 역할을 반복하는 경우입니다. 이렇게 하면 당장은 관계의 모양이 유지되는 것 같지만, 그 안에서 가장 많이 무너지는 사람은 결국 나 자신입니다. 내 마음의 상태와 겉으로 하는 역할 사이의 간격이 커질수록, 정서는 더 빨리 소진됩니다.
2) 거리를 한번 뒀다가, 죄책감 때문에 다시 과하게 보상하기
“요즘 내가 연락을 소홀히 한 것 같다”는 죄책감이 올라오면, 갑자기 선물을 보내거나, 예전보다 더 자주 연락하고, 지나치게 친절하게 대하는 식으로 보상하려 들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죄책감으로 하는 행동”은 오래가기 어렵고, 나를 더 지치게 만듭니다. 필요한 것은 과잉 보상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거리 조정입니다.
3) 거리를 두려는 나 자신을 ‘차갑고 나쁜 사람’으로 낙인찍기
“내가 너무하다”, “내가 이기적이다”라고 스스로를 몰아붙이면, 결국 나는 어느 쪽을 선택해도 편해지지 않습니다. 거리를 두면 죄책감에 힘들고, 거리를 두지 않으면 지쳐서 힘듭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자기 비난이 아니라, “내 마음도 보호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해 주는 태도입니다.
코치의 편지
거리를 두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오랫동안 많이 지쳐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몇 번이고 상처를 받고, 몇 번이고 무리해서 맞춰 주고, 몇 번이고 돌아오는 길에 혼자 마음이 무거웠던 시간을 지나왔을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그 관계를 유지해 온 것 자체가, 당신이 얼마나 책임감 있고, 마음을 쉽게 버리지 않는 사람인지 보여 줍니다.
그래서 오늘 제가 꼭 전하고 싶은 문장은 이것입니다. 거리두기는 버림이 아니라 자기보호다. 죄책감은 사실 ‘착한 사람 컴플렉스’에서 온다. 당신이 거리를 두고 싶어 하는 것은, 그 사람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더 이상 자신을 희생시키는 방식으로만 관계를 유지하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은 이기적인 마음이 아니라, 이제야 비로소 자신을 포함시키려는 마음입니다.
물론, 한 발 물러서는 순간 마음 한켠에서 불편함과 미안함이 올라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불편함 속에서도 이런 질문을 함께 붙들어 보셨으면 합니다. “만약 내가 지금처럼 계속 이 관계를 이어간다면, 1년 뒤의 나는 어떤 표정으로 살고 있을까?” “지금 이 지점에서 조금 거리두기를 시도한다면, 그때의 나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당신의 삶은 누군가에게 모두 내어주고, 늘 미안해하며 서 있어야 하는 무대가 아닙니다. 당신에게도 숨 쉴 공간이 필요하고, 심장이 조용히 쉬어갈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공간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거리두기라면, 그것은 도망이 아니라 당신의 삶을 지키는 선택입니다.
오늘 이 편지가, “나는 누군가에게서 조금 멀어져도 괜찮다”는 허락을 스스로에게 건네는 작은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당신이 마음의 자유를 조금 더 되찾은 자리에서 그 사람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면, 그때는 지금과는 다른 눈으로, 다른 거리에서 바라볼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의 마음 안에,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거리를 둘 권리가 있는 사람이다”라는 문장이 조용히 머물러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하루만큼은,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어떤 거리를 조정해 볼 수 있을지, 아주 작은 것부터 천천히 떠올려 보셨으면 합니다. 그 과정에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기를, 조용히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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