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의 마지막 집 1편-실버타운이 나을까, 집이 나을까
노년의 주거를 선택한다는 것은 단순히 주소를 정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남은 생을 어떤 방식으로 살아갈 것인가’라는 깊은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실버타운이 좋을까, 아니면 집에 머무는 것이 좋을까. 이 선택은 오늘날 수많은 시니어에게 숙제처럼 주어진 현실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답은 외부가 아닌, **스스로의 결정권** 안에 있습니다.
유범상 교수(한국방송통신대학교)는 『선배시민: 시민으로 당당하게 늙어가기』에서 “노인을 시민, 선배, 그리고 인간의 세 가지 존재로 재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노년을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사회에 여전히 기여하고 관계를 맺는 **선배시민**으로 봅니다. 즉, 노인의 주거 선택은 복지의 문제가 아니라 시민으로서의 권리이자,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삶을 꾸려가고 싶은가를 선언하는 행위입니다.
사회복지학의 활동이론(Activity Theory)은 노년의 삶의 질이 신체 활동, 사회적 관계, 여가 유지에 비례한다고 봅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실버타운의 장점은 분명합니다. 문화 프로그램과 공동생활을 통해 사회적 연결망을 유지하고, 심리적 고립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이론인 연속성이론(Continuity Theory)은 노인이 오랜 삶의 패턴과 정체성을 유지할 때 행복감이 높다고 말합니다. 익숙한 거리, 손때 묻은 물건, 창밖의 나무와 같은 일상의 풍경들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존재의 연장선**입니다. 자택에서의 삶은 ‘머무는 것’이 아니라 ‘나로 살아가는 시간의 지속’이 됩니다.
유범상 교수의 선배시민론은 이 두 가지 시각을 통합합니다. 그는 “시민으로 늙는다는 것은, 돌봄의 구조 속에서도 자기결정권을 포기하지 않는 일”이라고 강조합니다. 노년의 주거란 ‘보호받는 곳’이 아니라, 내가 여전히 나로서 살아갈 수 있는 **자율의 공간**이어야 합니다. 따라서 실버타운과 자택의 비교는 편리함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방향과 선택의 구조를 어떻게 세울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이 철학은 해외에서도 같은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지역포괄케어시스템(Community-Based Integrated Care System)은 “가능한 한 오래 집에서 살도록” 설계된 제도입니다. 의료, 돌봄, 복지, 주거를 통합해 지역 안에서 노년의 삶을 이어가도록 합니다. 미국의 Aging in Place(내 집에서 늙어가기) 정책도 같은 철학 위에 서 있습니다. 주택 개조, 원격 건강관리, 지역 자원봉사 네트워크를 결합해 노인이 낯선 시설로 옮기지 않고 자신의 집에서 스스로의 리듬을 유지하도록 돕습니다. 두 나라 모두 **자기결정과 관계의 지속**을 핵심 가치로 삼습니다.
결국 주거의 문제는 자산이 아니라 가치의 문제입니다. 노년의 집이란 누군가가 마련해주는 공간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삶의 형태여야 합니다. 유범상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빵이 있어야 산다. 그런데 장미도 있어야 한다.” 의료와 안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곳에는 삶의 품격, 관계의 향기, 그리고 의미의 장미가 있어야 합니다.
집이든 실버타운이든 중요한 것은 그 공간이 나를 닮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노년의 집은 머무는 곳이 아니라, 나답게 살아갈 여백을 품은 공간입니다. 그곳이 나의 결정과 일상의 리듬을 존중해준다면, 그곳이 바로 당신의 마지막 집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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