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의 노인들 -이동의 자유와 도시의 시간
출근길의 속도와 노년의 리듬이 부딪히는 도시, 서울의 지하철 안에서
아침 8시, 서울 지하철의 공기는 늘 팽팽하다.
플랫폼에는 사람들이 빽빽이 서 있고, 그만큼 사람들의 마음에도 여유가 없다.
문이 열리자 인파가 밀려들고, 사람들은 무표정하게 설 자리를 찾는다.
눈은 스마트폰으로 향하고, 아무 말 없이 서로의 존재를 모른 척한다.
노인 한 사람도 천천히 발을 옮긴다.
아무도 시선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젊은 시선에는 묘한 불편함이 묻어 있다.
그건 노인 한 사람 때문이 아니라,
속도의 질서가 어긋나는 순간의 긴장감 때문이다.
말은 없지만 공기 속에는 익숙한 말이 스친다.
'하필, 왜 이 복잡한 시간에 돌아다녀?'
서울 지하철은 정교한 규율로 움직인다.
열차는 분 단위로 정시 운행된다.
그 질서 속에서 사람들은 속도를 신념처럼 여긴다.
그러나 노인의 걸음은 언제나 한 박자 늦다.
그 느림이 도시의 리듬을 흐트러뜨린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에게는 이유가 있다.
병원 예약은 아홉 시.
진료를 받으려면 한 시간은 미리 움직여야 한다.
몸이 가장 덜 아픈 시간, 컨디션이 가장 좋은 시간은 바로 지금이다.
밤새 굳은 관절이 풀리고, 허리가 덜 뻐근하다.
아침 햇살이 피부에 닿을 때, 하루의 첫 걸음을 내딛는 게 덜 두렵다.
복지센터의 점심은 11시 반에 시작되고,
무료 급식소도 일찍 문을 연다.
그래서 그는 도시의 시계가 아니라, 자신의 몸의 시계에 따라 움직인다.
젊은이가 업무를 준비하는 시간,
그는 하루를 살아내기 위한 첫 일정을 향해 걷고 있는 것이다.
'고령자의 일상적 이동은 사회참여의 전제이며,
심리적 활력을 유지하는 핵심 요인'이란 연구 결과가 있다.
노인이 움직인다는 건 단순한 외출이 아니라
세상과의 관계를 유지하려는 몸의 기억이다.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그 기억에서 조금씩 밀려나는 일이다.
그래서 그는 오늘도 지하철을 탄다.
그 안에서만큼은 자신이 여전히 ‘어디론가 가는 사람’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절대로 자신은 늙지 않을 듯, 56세의 직장인이 말했다.
“왜 무임승차를 하는지 몰라.”
“무료 지하철마저 없으면 운동량은 더욱 줄 것이고,
의료비의 부담은 더 늘어난다.
사회적 비용 측면에서 보면, 지금이 훨씬 낫다.”
무임승차 혜택을 받지않던 ‘아직은 젊었던 시절’이었음에도 내 말은 다소 뾰족했다.
65세가 되어도, 어떤 이는 늙음이 부끄러워 무료카드를 발급받지 못하기도 한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노인 중에는 아예 그 혜택을 받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노년에게 교통카드는
세상이 나이든 자신을 완전히 잊지 않았다는,
마지막 남은 공경의 표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은 단순한 복지가 아니라,
사회가 나이가 든 자신을 ‘사람으로 기억한다’는 징표다.
그때 나는 알지 못했다.
이 논쟁이 단지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노년을 대하는 사회의 감정 구조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노년층의 무임승차는 오전 7시~10시, 오후 1시~3시에 집중된다한다.
출근과 점심, 세대가 겹치는 시간대다.
젊은 세대는 회사로, 노인은 병원이나 복지관, 약속을 향한다.
도시는 같은 선로 위에서 서로 다른 이유로 움직인다.
그러나 그 겹침이야말로, 이 도시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증거다.
전철은 조용하고, 공기는 마른 듯 차갑다.
노인은 기둥을 잡고, 잠시 숨을 고른다.
그는 오늘도 도시의 리듬 속에서 하루를 견딘다.
그에게 이동은 선택이 아니라 하루를 살아내는 일이다.
한 연구자는 이렇게 썼다.
“무임승차는 세대 통합의 상징적 장치이며,
고령층의 이동을 사회적 비용이 아니라 공동체의 연속성으로 봐야 한다.”
지하철은 단지 이동의 통로가 아니라,
세대가 잠시 스쳐 지나가며 서로를 확인하는 유일한 공공장소다.
노인의 느림은 방해가 아니다.
도시는 질서로 움직이지만, 하루는 사람의 속도로 이어진다.
관계와 의미는 구조의 바깥에서 자란다.
아침의 느린 걸음이 그 경직된 리듬을 풀어낸다.
전철의 문이 열리고 닫힌다.
노인은 작은 봉지를 쥔 채 한 칸의 하루를 건넌다.
그의 하루가 활기차길, 즐겁길 바란다.
도시는 완벽한 체계가 아니라,
불완전한 구조와 사람의 체온이 섞여 완성되는 생활이다.
참고자료
정미경·이영아 (2021), 「고령자 일상 이동과 공공휴식공간 이용의 관계 연구」, 한국도시연구.
박성용 (2019), 「고령층 무임승차의 사회적 의미와 정책적 방향」, 도시정책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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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도 다 자기들의 스케쥴이 있군요, 서로서로 공존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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