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일자리는 손자의 밥그릇을 빼앗는가
정년연장이 뉴스에 오를 때마다 빠지지 않는 말이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자리를 안 비켜줘서 손자가 취업을 못 한다.” 한 세대는 “이만하면 물러나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마음의 부담을 느끼고, 다른 세대는 “위에서 안 비켜 주니 우리가 설 자리가 없다”는 답답함을 느낍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문장은 단 한 줄로 세대의 감정을 자극하지만, 실제 노동시장 구조를 함께 놓고 보면 과연 얼마나 사실에 가까운 말인지, 어디까지가 오해인지 차분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글의 출발점은 단순합니다. 정년연장은 정말로 “위 세대가 오래 버티는 만큼 아래 세대의 기회가 줄어드는 제로섬 게임”일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정년을 둘러싼 논의를 세대 탓으로 돌리는 대신 다른 구조적 요인들을 함께 봐야 합니다. 이 글에서는 정년과 청년 일자리를 연결하는 흔한 상식을 한 번 풀어 보며, 시니어와 청년 모두가 덜 미안해도 되는 시각을 함께 찾아보려 합니다.
정년연장과 청년실업, 정말 1:1로 연결되는가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정년이 60세에서 65세로 늘어나면, 그만큼 5년 동안 자리가 안 나니까 청년은 더 못 들어간다.” 수학적으로만 보면 그럴듯해 보입니다. 그러나 실제 노동시장은 단순히 “정원 몇 석을 놓고 세대가 줄을 서 있는 구조”가 아닙니다. 기업은 경기가 좋을 때는 정원을 늘리기도 하고, 자동화·디지털 전환 속도가 빨라지면 같은 인원으로 더 많은 일을 하거나, 아예 일의 방식을 바꾸기도 합니다.
청년실업률이 높을 때마다 “정년이 문제”라는 말이 반복되지만, 청년 채용 규모를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은 경기, 산업 구조, 기업의 투자 계획, 기술 변화 등입니다. 정년연장은 노동시장 전체를 움직이는 여러 요인 중 하나일 뿐, 청년 취업난의 유일한 원인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원인이 복잡할수록 사람들은 눈에 잘 보이는 요인 하나를 골라 설명하고 싶어 합니다. 그 대표적인 표적이 바로 “정년”입니다.
노동시장은 한 층이 아니라 여러 층으로 나뉘어 있다
“할아버지와 손자가 같은 자리를 두고 경쟁한다”는 그림이 가능하려면, 두 세대가 정말로 같은 직무·같은 조건의 일자리를 놓고 겨루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습니다. 청년이 주로 진입하는 일자리와 시니어가 오래 머무르는 일자리는 서로 다른 층에서 움직이는 일이 많습니다.
많은 시니어는 오랜 기간 축적된 현장 경험과 조직 내 관계를 바탕으로, 관리·조정·교육·안전·품질 등 “경험이 쌓여야 가능한 역할”을 맡습니다. 반대로 청년은 디지털·데이터·콘텐츠·마케팅·연구개발 등 새로 생겨나는 직무나, 빠른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 영역으로 진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표면적으로는 같은 회사 안에 있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유형의 일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물론 완전히 겹치는 구간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공공기관·공기업·정규직 중심 직장처럼 정원이 명확히 정해진 조직에서는, 정년과 신규 채용 간의 긴장감이 상대적으로 더 크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일부 영역만을 전체 노동시장에 그대로 일반화하는 것은 위험한 단순화입니다. 오히려 많은 중소기업과 서비스, 돌봄, 지역 일자리에서는 청년 지원자가 너무 적어 “사람을 구하지 못하는” 현실이 더 큰 문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청년이 겪는 어려움의 진짜 원인, ‘위 세대’가 아니라 구조의 변화
청년이 느끼는 취업난은 분명합니다. 원하는 일자리는 좁고, 경쟁은 치열하고, 준비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은 점점 늘어납니다. 이때 가장 눈에 잘 띄는 요인이 “정년이 늘어났다”는 뉴스입니다. 그러나 청년을 가장 어렵게 만드는 요인은 시니어 개인이 아니라 “고용은 유연하게, 책임은 개인에게 돌리는 구조”입니다.
기업들은 한 번 뽑으면 오래 데려가는 정규직보다, 필요할 때만 쓰는 계약·파견·플랫폼형 인력을 늘려왔습니다. 경기 변동에 따라 채용 규모를 급격히 줄였다가 다시 늘리기도 하고, 자동화와 디지털 전환으로 일부 직무를 아예 없애기도 합니다. 청년에게 어려운 것은 ‘위 세대가 물러나지 않는 것’보다 ‘새로운 안정적 일자리가 충분히 만들어지지 않는 현실’입니다. 문제의 초점이 정년이냐, 일자리 창출 구조냐에 따라 해법도 완전히 달라집니다.
정년연장을 둘러싼 ‘미안함의 감정’이 만들어내는 그림
정년연장 논의에서 시니어가 가장 많이 느끼는 감정 중 하나는 ‘미안함’입니다. “내가 조금 더 버티면, 아이들 자리는 줄어드는 것 아닐까” 하는 마음입니다. 이 감정은 매우 품위 있고,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나옵니다. 하지만 구조를 잘못 이해한 미안함은, 스스로를 과도하게 죄인처럼 느끼게 만들 위험이 있습니다.
반대로 청년들은 “윗세대가 안 물러나서 우리는 기회를 잃고 있다”는 서사를 들으며 성장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청년의 분노와 시니어의 미안함이 서로를 바라보지 못한 채, 같은 문장 위에서만 부딪히게 됩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서로를 향한 더 강한 비난이 아니라, “정말 그런 구조인가?”라는 질문을 함께 던지는 일입니다. 감정이 아니라 구조를 함께 보는 순간, 앞에서 보이던 그림이 조금 달라집니다.
어디에서 실제 긴장이 생기고, 어디에서는 함께 일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정년연장이 청년에게 실제 부담이 되는 지점은 어디일까요? 주로 다음과 같은 영역에서 긴장이 커지기 쉽습니다. 정원이 고정된 공공기관·공기업, 일부 대기업의 특정 직군, 승진 구조가 좁게 막힌 직책 중심 조직 등입니다. 이 영역에서는 정년이 길어질수록 승진 속도가 느려지고, 신규 채용 숫자가 줄어드는 체감이 생길 수 있습니다.
반면 많은 민간 영역, 특히 서비스·돌봄·지역·중소기업·신산업 분야에서는 “사람이 부족한 문제”가 더 심각합니다. 여기에서는 시니어와 청년이 역할을 나누어 함께 일할 수 있는 여지가 오히려 넓습니다. 경험이 필요한 역할은 시니어가, 속도와 디지털 감각이 필요한 역할은 청년이 맡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세대 자체가 아니라, 이런 역할 나눔을 뒷받침하는 교육·재훈련·근로 조건이 충분히 갖추어졌느냐입니다.
‘자리 싸움’이 아닌 ‘역할 재설계’라는 관점이 필요하다
이제 질문을 조금 바꿔볼 필요가 있습니다. “할아버지의 자리가 손자의 밥그릇을 빼앗는가?”라는 물음 대신, “정년이 길어지는 시대에 각 세대는 어떤 역할을 맡으면 좋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보는 것입니다. 이 질문은 누가 더 많이 갖고 있느냐를 따지는 싸움에서 벗어나, 서로의 강점을 어떻게 조합할 것인지로 시선을 옮기게 합니다.
시니어는 오랫동안 축적한 경험·현장감·사람 관리 능력을 살릴 수 있는 자리로, 청년은 새로운 기술과 디지털 감각을 발휘할 수 있는 자리로 이동하는 구조를 만들면, 정년연장은 단순히 한 세대가 자리를 오래 지키는 문제가 아니라 “노동력 부족 시대의 지속가능한 인력 운용 전략”이 됩니다. 여기에서는 누가 누구의 밥그릇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그릇을 채우는 방식이 중요해집니다.
정년연장을 둘러싼 오해를 푸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할아버지의 일자리는 손자의 밥그릇을 빼앗는가”라는 문장은 쉽게 입에 오르내리지만, 실제 현실을 모두 설명해 주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그 문장이 너무 강렬해서 청년과 시니어가 함께 바라봐야 할 더 큰 문제들, 즉 새로운 양질의 일자리가 충분히 만들어지지 않는 구조, 자동화·디지털 전환 속에서 뒤처진 교육과 지원 체계를 가려 버리기도 합니다.
정년연장 논의를 조금 더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이 오해부터 푸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누군가를 탓하는 대신, 어떤 구조가 세대 모두를 어렵게 만드는지 함께 보는 것, 그리고 각 세대가 어떤 역할을 나눠 맡을 때 서로에게 덜 미안한 사회가 될 수 있는지 묻는 것입니다. 이 글이 그 질문을 시작하는 작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면, 이미 의미 있는 한 걸음을 내딛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