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살아내다, 살아가다, 그리고 살아지다
네 단어는 모두 같은 ‘삶’을 말하지만, 그 안의 온도는 다르다. 젊을 때는 ‘사는 것’이 당연했지만, 나이가 들수록 삶은 조금 더 복잡한 언어로 다가온다. 때로는 버티고, 때로는 받아들이며, 또 때로는 그저 살아지는 날도 있다. 그 모든 순간을 통과한 사람만이 안다. 인생은 의지와 신뢰가 번갈아 나를 이끌어주는 여정이라는 것을.
살다 – 의지로 세상을 만나는 시간
‘살다’는 인생의 첫 번째 문장이다. 아직 삶이 내 손 안에 있다고 믿는 시절,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생각하며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그 시기의 ‘살다’는 의지와 에너지의 언어다. 스스로 선택하고, 결과를 만들어내며, 삶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젊음의 자부심이 깃들어 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 깨닫는다. 사는 것이란 단순한 욕망의 실현이 아니라, 의지로도 어쩔 수 없는 변수를 품은 일이라는 것을.
살아내다 – 고통 속에서도 의미를 짓는 일
삶이 내 뜻과 다르게 흘러가기 시작할 때, 우리는 처음으로 ‘살아낸다’는 말을 배운다. 살아내는 시간은 고통의 시간이다. 병, 상실, 책임, 외로움이 나를 덮어도 하루를 끝내야 하는 이유를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이때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Viktor E. Frankl).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수용소에서 가족을 잃고도, 인간이 절망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지킬 수 있음을 보여준 사람이다. 그는 『죽음의 수용소에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을 수는 있지만, 단 하나, 어떤 태도로 그 상황을 맞을 것인지는 빼앗을 수 없다.”
이 말은 ‘살아낸다’는 말의 본질을 정확히 짚는다. 살아내는 건 버티는 일이 아니라, 태도를 선택하는 일이다. 삶이 고통스러울수록, 그 안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프랭클은 고통을 부정하지 않았다. 대신 그 고통 속에서도 “왜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 태도가 인간의 존엄이라고 믿었다. 그에게 ‘살아낸다’는 것은 결국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용기”였다.
살아가다 – 이해와 수용의 시간
살아내는 시절이 지나면, 삶은 조금 부드러워진다. 더 이상 모든 것을 내 뜻대로 돌리려 하지 않는다. ‘살아간다’는 말에는 시간의 리듬이 있다. 이제는 하루를 버티는 대신, 하루를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삶을 적으로 두지 않고, 친구로 받아들이는 태도.
살아가는 건 타협이 아니라 이해다. 성취보다 관계를, 완벽보다 조화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마음. 젊은 시절의 열정이 식은 게 아니라, 그 열정을 품고도 세상을 포용할 만큼 성숙해진 것이다. 삶이 내게 가르쳐준 건 단 하나, 이해는 포기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 평화의 시작이라는 사실이다.
살아지다 – 통제 너머의 신뢰로
그리고 언젠가, 이렇게 말하게 된다. “힘든데도 또 하루가 살아지네.” 이 말에는 체념보다 더 깊은 무언가가 있다. 그건 바로 삶에 대한 신뢰다.
‘살아지다’는 수동처럼 들리지만, 실은 모든 능동을 통과한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경지다. 젊을 때는 내가 삶을 이끌었다고 믿었지만, 이 시점에선 삶이 나를 이끌고 있음을 안다. 삶이 나를 버리지 않았고, 나는 그 흐름 속에서 다시 일어나고 있음을 안다.
프랭클의 말처럼, “삶이 우리에게 의미를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살아지다’는 그 의미를 완전히 받아들인 사람의 언어다. 이제는 애써 붙잡지 않아도, 삶이 나를 데려가고, 나는 그 흐름을 믿는다. 그 신뢰 안에서 인간은 가장 평화로운 자유를 경험한다.
삶의 네 문장, 그리고 인간의 품격
살다 – 의지로 세상을 시작하고
살아내다 – 고통 속에서 의미를 찾고
살아가다 – 관계 속에서 균형을 배우고
살아지다 – 신뢰 속에서 평화를 얻는다.
이 네 문장은 결국 한 사람의 인생을 완성하는 문장이다. 삶은 우리가 노력한 만큼만 주어지지 않는다. 때로는 견뎌야 하고, 때로는 흘려보내야 하며, 때로는 그냥 살아져야 한다.
삶이 내 뜻과 다르게 흘러가도 괜찮다. 그 안에도 여전히 의미가 있으니까. ‘살아진다’는 건, 결국 삶이 나를 데려가더라도 나는 여전히 의미를 짓고 있다는 증거다.
오늘도 그 사실 하나로, 우리는 충분히 살아갈 이유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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