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마음건강, 국가가 책임져야 할 새로운 복지의 핵심

한국의 노년층 자살률은 여전히 OECD 국가 중 최상위권이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시니어의 극단적 선택으로 인한 사망률(통계상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40.6명으로, OECD 평균 16.5명 수준의 두 배를 훌쩍 넘는다. 이 숫자는 한 세대의 마음이 얼마나 지쳐 있는지를 보여주는 국가적 경고음이다.

시니어 마음건강, 국가가 책임져야 할 새로운 복지의 핵심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하루 평균 거의 열 명에 가까운 65세 이상 시니어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는 추정이 나온다. 숫자만 보면 익숙한 통계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 뒤에는 가족과 이웃, 지역사회 전체가 잃어버린 삶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 문제는 이 상황을 아직도 ‘개인의 약함’으로만 돌리는 시선이다. 이제는 시니어의 마음건강을 새로운 형태의 복지, 즉 국가가 책임져야 할 공적 과제로 바라봐야 한다.

고령층 자살률, 왜 이렇게까지 높은가

한국의 전체 자살률은 주요 선진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며, 특히 65세 이상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한 연구는 우리나라 전체 자살 사망률이 2019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28명대인데, 이 중 상당 비중이 65세 이상 고령층에게서 발생한다고 분석한다. 이 연구는 고령층의 자살이 일시적 감정 폭발이 아니라, 오랜 기간 누적된 경제적 어려움과 불안정한 사회보장, 그리고 관계 단절과 외로움이 겹쳐진 결과라고 지적한다.

언론과 학계가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요인은 크게 네 가지다. 첫째, 충분하지 않은 노후 소득과 불안정한 주거 환경, 둘째, 만성질환·통증·장애 등 건강 문제, 셋째, 배우자나 친구의 상실로 인한 상실감, 넷째, 1인 가구 증가와 가족·이웃 관계 약화로 인한 사회적 고립이다. 특히 “더 이상 가족에게 부담이 되고 싶지 않다”는 인식이 고령층 극단적 선택의 배경으로 자주 언급된다. 경제와 정서가 함께 흔들리는 복합 위기인 셈이다.

정책은 어디까지 와 있고, 무엇이 부족한가

정부는 그동안 여러 차례 ‘자살예방종합대책’과 ‘생명존중정책’을 내놓으며 예방 정책을 강화하겠다고 밝혀왔다. 최근에는 정신건강 서비스를 확대하고, 위기 상담 인프라를 늘리겠다는 계획과 함께, 고위험군에게 무료 상담을 제공하고 정신건강의학과 치료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약속도 이어지고 있다. 대통령 직속 위원회에서 정신건강을 별도 의제로 다루겠다고 밝힌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그러나 현실의 체감도는 여전히 낮다. 우선 정신건강 예산이 전체 보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충분하지 않고, 그나마 편성된 예산도 청년·직장인 중심 대책에 먼저 쓰이는 경우가 많다. 시니어는 “이미 다 살아봤다”는 인식 속에서,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기 쉽다.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있어도 고령층이 찾아가기에는 심리적·물리적 거리가 모두 멀다. “그 나이에 무슨 상담이냐”는 낙인과, 대중교통 접근성, 신체 제약까지 겹친다.

또 하나의 문제는 ‘디지털 중심 정책 설계’이다. 온라인 자가검진, 앱 기반 상담, 화상 프로그램 등은 젊은 세대에게는 유효하지만, 스마트폰 활용이 익숙하지 않은 시니어에게는 오히려 또 다른 장벽이 될 수 있다. 고령층 마음건강 정책은 애초부터 “비디지털, 오프라인, 직접 만남”을 전제로 설계해야 현장에서 작동한다.

해외 사례가 보여주는 방향 – 관계를 디자인하는 정책

일본과 북유럽 국가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고령층 고립과 고독사를 큰 사회문제로 인식하고, 지역 단위 정책을 강화해왔다. 일본은 마을마다 ‘지역살핌센터’를 두어 의료·복지·상담 기능을 하나로 묶고, 정기적인 방문과 안부 확인을 제도화했다. 핀란드는 65세 이상에게 정신건강 상담을 건강검진의 한 항목으로 포함시켜, “몸검진을 받으러 갔다가 자연스럽게 마음검진까지 함께 받는” 구조를 만들었다.

서울시도 최근 ‘외로움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대규모 예산을 들여 24시간 상담 전화, 공동 식사 공간, 소셜 활동 프로그램 등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외로움을 만드는 경쟁과 과도한 성과 압박, 돌봄의 사각지대가 그대로라면, 프로그램 몇 개로는 근본적인 변화가 어렵다”고 우려한다. 중요한 것은 시설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시니어가 실제로 그 공간에 들어와 앉을 수 있도록 관계의 문턱을 낮추는 일이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시니어 마음복지’의 핵심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고령층 마음건강을 위한 정책의 방향을 세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치료’에서 ‘예방’으로 중심축을 옮길 것. 위기 상황에서 병원을 찾도록 기다리기보다, 평소에 우울감과 고립감을 낮추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둘째, 개인 상담만이 아니라 ‘관계 회복’을 목표로 할 것. 친구, 이웃, 자조모임, 봉사활동과 같이 관계가 생기는 구조가 곧 마음복지라는 관점이다. 셋째, 고령층의 목소리를 정책 설계에 직접 반영할 것. “당사자가 참여하지 않는 복지는 오래 가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연구자들은 또한 “기초연금, 사회부조, 돌봄 서비스 같은 사회보장 제도가 강화될수록 자살률이 완만하게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한다. 이는 마음건강 정책이 보건부의 과제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연금·주거·돌봄·노동 정책과 함께 설계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고독과 우울은 결국 ‘나만 위험한 삶을 살고 있다’는 감각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독자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 세 가지 실천 안내서

그렇다면 이 글을 읽는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정책을 비판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당장 오늘부터 할 수 있는 실천을 정리해본다. 완벽하게 하지 않아도 좋다.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에서 한 발짝 나아가는 것이다.

1) 내가 시니어 당사자라면 첫째,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잠이 잘 오지 않거나, “사는 맛이 없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면 이것을 ‘성격 탓’으로 방치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거주지 보건소, 정신건강복지센터, 노인복지관에는 무료 또는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마음건강 상담 프로그램이 있다. 전화 한 통으로 예약할 수 있는 곳도 점점 늘고 있다. 둘째, 하루 10분이라도 누군가와 꼭 통화하거나 대화를 나누는 작은 습관을 만들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괜히 폐만 끼치는 것 같다”는 생각이 올라오더라도, 그때일수록 반대로 전화를 거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 10분이 내 마음의 온도를 지켜주는 최소한의 안전벨트가 될 수 있다.

2) 가족·이웃이라면 주변 시니어 가족이나 이웃에게 다음과 같은 신호가 보이면 한 번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말수가 눈에 띄게 줄고, 예전에 즐기던 활동을 모두 그만두고, “미안하다”, “이제 나 갈 때가 된 것 같다”는 말을 반복한다면, 그냥 흘려듣지 않는 것이 좋다. “힘들어 보여요, 제 얘기도 좀 들어주시겠어요?”처럼 상대를 ‘도움이 필요한 약한 존재’가 아니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으로 존중하며 말을 건네는 태도가 중요하다. 혼자 해결하려 하지 말고, 거주지 지자체의 복지 담당 부서, 노인복지관,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연락해 “이런 상황인데 상담이나 방문 지원을 받을 수 있나요?”라고 묻는 것만으로도 좋은 출발이 된다.

3) 시민으로서, 정책에 참여하는 방법 시니어 마음건강은 더 이상 ‘전문가들만 논의하는 영역’이 아니다. 주민참여예산 제도, 지자체 공청회, 지역 의회 청원 등을 통해 “고령층 마음건강 예산을 늘려달라”, “1인 가구 안부 확인 인력을 확충해달라”는 의견을 전달할 수 있다. 작은 서명운동이나 지역 모임에서도 이 주제를 한 번쯤 꺼내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결국 정책은 시민의 문제의식과 요구가 쌓여야 움직인다.

마음을 지키는 복지로, 고령사회를 다시 설계하기

한국 사회는 빠르게 늙어가고 있다. 인구 구조가 바뀐 만큼 복지의 기준도 바뀌어야 한다. 이제 복지는 단순히 최소한의 생활비를 보장하는 제도가 아니라, “살아갈 이유를 지켜주는 마음의 안전망”이 되어야 한다. 시니어 마음건강을 위한 정책은 특별한 혜택이 아니라, 건강보험과 마찬가지로 모두가 누려야 할 기본 권리로 자리 잡아야 한다.

국가의 계획과 예산, 지자체의 사업은 시간이 걸릴 수 있다. 그러나 누군가의 하루는 지금 이 순간에도 버티기 힘들 수 있다. 그래서 더 필요하다. 정책과 제도 이야기 속에서도,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행동 하나를 떠올려 보는 일. 오늘 하루, 떠오르는 시니어 한 분에게 안부 전화를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그 전화 한 통이, 누군가의 마음이 무너지지 않도록 받쳐주는 가장 현실적인 복지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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