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를 봐줘야 좋은 부모일까- 돌봐주지 못하면 이기적인 조부모일까

손주를 봐줘야 좋은 부모일까 – 돌봐주지 못하면 이기적인 조부모일까

나이가 들수록 조부모는 한 가지 질문과 마주하게 됩니다. “손주를 봐줘야 좋은 부모인가?”, “안 봐주면 이기적인 조부모인가?”

한국 사회는 손주 돌봄을 따뜻한 가족의 상징처럼 이야기해 왔습니다. 그러나 조부모의 마음속 풍경은 훨씬 복잡합니다. 손주를 사랑하지만 자신의 일상도 소중하고, 돕고 싶지만 지치기도 하고, 기쁨과 부담이 같은 자리에 놓여 있습니다.

손주 돌봄은 의무도, 도덕적 기준도 아닙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삶과 체력, 감정, 가치 속에서 각자가 선택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사랑하는 마음과 지켜야 할 삶은 서로 다르다

손주와 함께 있는 시간은 분명 따뜻합니다. 조부모의 경험은 아이를 안정시키고, 아이와의 교감은 큰 기쁨을 줍니다.

그러나 사랑이 있다고 해서 내 하루 전체를 희생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시니어도 한 사람의 삶을 살아가고 있고, 지켜야 할 리듬과 감정의 여유가 있습니다.

돌봄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랑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돕는다고 해서 더 좋은 부모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사랑의 크기는 돌봄의 양으로 측정되지 않습니다.

‘좋은 부모’에 대한 고정관념이 만든 보이지 않는 압박

시니어들이 가장 많이 느끼는 감정은 피로보다 죄책감입니다. “오늘은 쉬고 싶은데 그래도 말하면 나쁜 사람 같겠지?”, “내가 안 보면 아이가 불편할 텐데…”, “부모가 된 자녀를 돕는 게 당연한 거 아닐까?” 같은 생각들이 마음속을 채웁니다.

이런 생각 뒤에는 오랫동안 사회가 조부모에게 기대해 온 희생의 미덕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준이 정말 공정한 기준인지, 조부모의 삶에도 여유와 존중이 필요하지 않은지 다시 물어야 합니다.

돌봄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각자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의 문제입니다.

돌봄을 하지 않는 선택도 충분히 존중받아야 한다

손주 돌봄을 하지 않는 선택에는 그 나름의 사정과 이유가 있습니다. 건강, 체력, 부부의 삶, 개인의 프로젝트, 혹은 단순히 나의 일상을 지키고 싶은 마음까지, 어떤 이유도 비난받거나 미안해해야 할 이유가 되지는 않습니다.

조부모의 삶은 이미 오랜 시간에 걸쳐 성실히 쌓아 온 인생이며, 그 인생 위에 또 다른 의무가 더해져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시니어가 자기 삶을 지키는 선택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숙한 자기 보호에 가깝습니다.

돌봄을 할 때에도 경계가 있어야 관계가 오래 간다

반대로 손주 돌봄을 선택했더라도 기준 없는 호의는 가장 위험합니다. 경계 없이 계속 도우면 감정이 먼저 소진되고, 조용한 서운함과 피로가 쌓여 관계를 흔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어떤 방식으로 도울 때 부담이 덜한가?”, “내가 지켜야 하는 시간은 언제인가?”, “내 체력과 감정은 어디까지 괜찮은가?”

이 기준은 사랑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오래 유지하기 위한 기술입니다. 경계가 있을 때 오히려 감정이 덜 소모되고, 서로에 대한 예의와 고마움이 오래 유지됩니다.

조부모는 ‘빈자리를 채우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만의 삶을 가진 존재다

손주 돌봄이 반복되다 보면 시니어의 자존감이 흔들리기도 합니다. “나는 이제 아이를 돌보는 사람으로만 존재하나?”, “내 시간이 늘 뒤로 밀리는구나” 하는 감정이 차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부모는 누군가의 부모이기 이전에 하나의 인생을 가진 주체입니다. 그 인생은 인정받아야 하고, 그 선택은 존중받아야 합니다.

손주 돌봄은 조부모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일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이미 충분히 소중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마무리 –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할 수 있는 방식’을 찾는 일

손주를 돌보는 선택도, 돌보지 않는 선택도 모두 소중하고 정당합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방식으로 가족과 내 삶을 함께 지키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솔직해지는 일입니다.

선택의 유무보다 중요한 것은 나의 삶을 소모하지 않는 방향을 찾는 일입니다. 그 기준이 분명할 때, 조부모와 자녀, 손주 모두가 더 편안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지금의 여러분에게 필요한 선택은 무엇이라고 느끼시나요? 그리고 그 선택을 누가, 어떻게 이해해 주었으면 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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