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대수명 83.7세, 건강수명 65.5세 — 오래 사는 시대의 진짜 질문

한국 기대수명 83.7세, 건강수명 65.5세 — 오래 사는 시대의 진짜 질문

한국인의 기대수명이 83.7세로 올라섰다는 발표는 단순한 숫자 뉴스가 아니라, 앞으로 한국 사회의 노년 구조가 어떻게 바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신호입니다. 국가데이터처(구 통계청)가 2024년 생명표를 발표하자, 여러 언론이 이를 주요 기사로 다뤘습니다. “이제 한국은 태어나면 평균 83.7세까지 산다”는 문장은 듣기에는 희망적으로 보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조금 다른 현실이 숨어 있습니다.

2024년 출생아의 기대수명은 83.7세이고, 남성은 80.8세, 여성은 86.6세입니다. 특히 여성의 기대수명은 OECD에서도 가장 높은 나라들 가운데 속하며, 한국은 사실상 초장수국가 범주에 들어간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인구 구조만 놓고 보면, 우리는 이미 “오래 사는 나라”를 넘어 “매우 오래 사는 나라”가 된 셈입니다.

하지만 이번 통계에서 더 중요한 지점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건강수명입니다. 건강수명은 질병이나 장애 없이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기간을 뜻하는데, 이번 발표에서는 65.5세로 나왔습니다. 기대수명 83.7세와 비교하면, 평균적으로 약 18~20년 동안은 크고 작은 질병, 만성질환, 통증과 함께 살아갈 가능성이 높다는 뜻입니다. 수명은 늘었지만, 그 안에 포함된 건강한 시간과 아픈 시간이 어떻게 나뉘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라는 사실이 통계로 드러난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질문이 생깁니다. “우리는 정말로 오래 사는 것을 기뻐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기대수명은 계속 오르고 있지만, 건강수명은 크게 늘지 못하고 있고, 어떤 지표에서는 오히려 정체되거나 약간 줄어드는 흐름도 보입니다. 문제는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스스로의 삶을 감당할 수 있느냐에 있다는 사실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기대수명은 왜 늘고, 건강수명은 왜 따라오지 못할까

기대수명이 늘어난 배경은 비교적 분명합니다. 의료 인프라가 좋아지고, 영양 상태가 개선되고, 상하수도와 주거환경 같은 기본 여건이 좋아졌습니다. 감염병 관리 능력도 크게 향상되어 과거에 생명을 위협하던 질병들이 더 이상 치명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그만큼 사람들은 더 오래 살 수 있는 조건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건강수명은 이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생활 방식이 급격히 바뀌면서, 하루 대부분을 앉아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고, 과식·야식·단 음식을 손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고, 스트레스가 높은 환경에서 오래 일하다 보니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심장질환 같은 만성질환이 크게 늘어났습니다. 이 만성질환들은 처음에는 뚜렷한 증상을 잘 드러내지 않다가, 어느 순간부터 건강수명을 크게 깎아내리는 역할을 합니다.

여기에다 한국 특유의 구조도 영향을 줍니다. 은퇴 후에도 충분히 쉬지 못하고, 생활비·부채·자녀 지원 문제로 계속 긴장된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작 몸은 쉬어야 할 나이에 마음은 계속 불안해지는 구조입니다. 많은 사람이 “나이가 들면 원래 여기저기 아픈 법이지”라며 그냥 넘겨 버리는 통증과 증상들은, 건강수명을 줄이는 출발점이 되기도 합니다.

노년의 20년,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묻는 통계

이번 통계가 지금의 50대, 60대에게 주는 메시지는 매우 구체적입니다. 첫째, 오래 살 가능성이 매우 높은 세대라는 것, 둘째, 그만큼 노년 20년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크게 달라질 세대라는 점입니다. 기대수명 83.7세, 건강수명 65.5세라는 숫자는 “노년에는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막연한 태도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주요 사망 원인을 보면 암, 폐렴, 심장질환, 뇌혈관질환이 상위에 올라 있습니다. 특히 암이 사라진다면 기대수명이 3년 이상 늘어난다는 추정은, 질병 하나를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삶 전체의 길이뿐 아니라 노년기의 안정감까지 좌우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조기 검진과 예방에 대한 투자가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 남은 시간을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수단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이 격차가 곧 돌봄 구조의 변화를 언젠가 본격적으로 요구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건강수명 이후의 20년은 의료비, 방문간호, 요양서비스, 주거 지원 등 다양한 사회적 자원과 연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가족 구성은 점점 작아지고, 혼자 사는 시니어는 늘어나고 있습니다. 결국 “누가 나를 돌봐줄 것인가?”라는 질문은 “어디에서, 어떤 구조 속에서 살 것인가?”라는 질문과 연결됩니다.

건강수명 65.5세 이후의 20년을 다시 설계한다는 것

건강수명 이후의 20년이 무조건 힘들고 어두운 시간이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시간을 미리 의식하고, 조금 더 이르게 준비하는 태도입니다. 하루 20~30분이라도 꾸준히 걷는 것, 체중뿐 아니라 근육량을 의식하면서 식사를 조절하는 것, 집 안의 조명·바닥·손잡이·수납 위치를 점검해 낙상 위험을 줄이는 것, 작은 증상들을 “나이 탓”으로 돌리지 않고 한 번 더 확인해 보는 것. 이런 것들이 건강수명을 조금씩 밀어 올리는 실제적인 방법입니다.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건강수명과 기대수명 사이의 격차에는 몸의 문제뿐 아니라 마음과 관계의 문제가 함께 들어 있습니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생각은 깊어지지만, 때로는 부정적인 방향으로만 흐르기도 합니다. 정기적으로 통화하는 사람, 가볍게라도 만나는 모임, 함께 걷는 이웃 한 명이 있는지 돌아보는 일은 건강수명 통계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삶의 질에는 매우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입니다.

재정과 주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앞으로 20년의 지출 구조를 대략이라도 계산해 보는 일, 연금·저축·보험·예상 의료비를 한 번에 놓고 보는 일은 숫자에 약한 사람에게도 필요한 과정입니다. 또, 500m 생활권 안에 병원·약국·마트·공원·지하철 등 필요한 시설이 어느 정도 모여 있는지 확인해 보는 일은, 나이가 들수록 움직일 수 있는 반경이 곧 삶의 품질이 된다는 점에서 점점 더 중요해집니다.

기대수명·건강수명 체크리스트

이번 통계를 그냥 “평균수명이 늘었다더라” 하는 뉴스로 넘기지 않기 위해, 지금 시점에서 점검해 보면 좋은 항목들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매일 20~30분 걷기 루틴을 만들었는가
2. 체중이 아니라 근육량과 힘을 기준으로 몸 상태를 점검하고 있는가
3. 혈압·혈당·콜레스테롤 세 가지 수치를 정기적으로 확인하고 있는가
4. 집 안 조명, 바닥 미끄럼, 욕실과 계단의 손잡이 등 낙상 위험 요소를 정리했는가
5. 연령대에 맞는 암 검진을 제때 받고 있는가
6. 식사에서 단백질·채소·수분 섭취를 의식적으로 챙기고 있는가
7. 일주일에 최소 몇 번은 누군가와 대화하고, 사람을 만나는 시간을 만들고 있는가
8. 호흡기, 심장, 수면과 관련된 작은 이상 신호를 “괜찮겠지” 하고 넘기지 않고 살펴보고 있는가
9. 앞으로 20년의 재정 흐름(연금, 생활비, 의료비, 비정기 지출)을 대략이라도 그림으로 그려본 적이 있는가
10. 500m 생활권 안에 필요한 시설이 모여 있는지, 지금 사는 집이 나이 들어서도 유지 가능한 구조인지 점검해 보았는가

기대수명 83.7세, 건강수명 65.5세라는 숫자는 우리의 삶을 겁주기 위한 통계가 아니라, 이제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방향을 조용히 알려주는 신호일지도 모릅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의 남은 시간이, 단순히 길기만 한 시간이 아니라, 조금 더 편안하고 덜 아픈 시간으로 채워지기를 바라며, 각자에게 맞는 체크리스트 한두 가지부터 천천히 실천해 보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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