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운세 대신 오늘의 나를 읽기로 했다

오늘의 운세 대신 오늘의 나를 읽기로 했다

요즘 나는 신문의 오늘의 운세를 보지 않기 시작했다. 예전엔 작은 행운이라도 기대며, 나는 여전히 잘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고 싶어 했다. 그래서 신문을 펼치면 운세 코너를 지나치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내가 찾고 있던 건 오늘의 운세가 아니라 이미 지나간 가장 좋았던 시절이었다는 사실을. 그때의 나를 인생의 기본값으로 붙들고 있었기 때문에, 운세가 주는 말 한 줄이 괜히 마음을 흔들어 놓았던 것이다.

그 봄날이 내 인생의 자연스러운 한 계절이었다는 걸 받아들이자, 운세의 덕담은 더 이상 큰 의미가 없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운세보다 오늘의 나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운세에 기대던 마음의 정체

돌이켜 보면, 운세는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니었다. 문제는 내 마음이었다. 내 안에서 스스로를 단단히 세울 힘이 부족하던 시절엔 바깥의 신호가 필요했다. 칭찬 한마디, 점괘, 별자리 운세 같은 것들이 잠시라도 마음을 붙들어 주는 기둥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그 기둥은 오래 버티지 못했다. 좋은 운세는 잠깐의 안도만 줬고, 나쁜 운세는 괜히 하루를 무겁게 만들었다. 기준이 내 안이 아니라 바깥에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좋았던 시절을 기본값으로 삼는 착각

왜 요즘 운세가 더 이상 와닿지 않을까 생각하다가, 나는 여전히 과거의 나를 기준으로 지금의 나를 평가하고 있음을 알았다.

몸이 가벼웠던 때, 일이 척척 풀리던 때, 사회적 역할로 인정받고, 웃는 얼굴들이 곁에 많았던 때를 내 삶의 원래 상태라고 착각했던 것이다.

그 기준이 계속 남아 있으니 어떤 운세도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문제는 운세가 아니라, 그 시절처럼 되어야 한다는 마음속 요구였다.

봄날을 기본값에서 내려놓는다는 것

봄은 원래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인생의 봄도 마찬가지인 것같다. 그런데 가만히 돌아보면, 봄이 지나간 자리마다 화려하게 몸을 키우던 여름이 있었고, 숨을 깊게 들이켜게 만드는 가을의 상쾌한 아름다움이 있었고, 공기를 맑게 정리해 주는 겨울의 청아한 추위까지 각기 다른 시간이 나름의 얼굴로 찾아와 주었다.

생각해 보면 그 모든 계절은, 조금씩 다르게 즐길 만한 시간들이었다. 결국 문제는 봄이 간 것이 아니라 봄만 내 인생의 기본값이라고 우기던 나였다.

그 욕심을 내려놓고 나니 운세가 필요 없게 되었다. 지금의 계절에는 지금의 속도가 있다는 것을 조금씩 받아들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의 운세 대신, 오늘의 나

운세를 끊고 나서 나는 하루가 끝날 때 스스로에게 세 가지를 묻는다. 오늘 내 몸은 어땠는지, 오늘 내 마음은 어디쯤 있었는지, 오늘 나는 내 감정을 숨기지 않았는지.

그 질문들 속에서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 사이의 작은 차이를 확인하게 된다. 그 변화는 미미하지만, 운세보다 진짜 내 삶을 보여준다.

시니어가 된다는 것, 운보다 기준으로 사는 일

나이가 들수록 잃는 것도 있지만 그만큼 기준과 분별력이 생긴다. 운이 좋은 날보다 기준이 분명한 날이 더 단단하다.

오늘 운이 좋을까보다 오늘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라는 질문이 더 중요해진다. 계절이 봄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마음, 이제는 그 마음이 나를 지탱한다.

마무리

봄날이 다시 오지 않아도 괜찮다. 그 시절을 기본값으로 삼지 않아도 오늘의 나에게는 오늘이라는 빛날 준비를 마친 하루가 주어져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운세를 넘긴다. 대신 조용히 나 자신을 읽는다. 그 연습만으로도 하루가 조금 더 단단해지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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