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좋은 도시가 시니어 건강수명을 늘린다 — 한국건강지수와 세계 보행도시 흐름

왜 어떤 도시는 오래 살까 — 한국건강지수가 밝힌 ‘걷기 좋은 도시’의 힘

도시는 나이를 먹을수록 더 크게 느껴집니다. 집에서 버스정류장까지의 거리, 공원 접근성, 횡단보도를 건널 때의 긴장감, 그리고 “오늘은 어디까지 걸어볼까”라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드는지의 여부까지 모두가 시니어의 건강수명과 연결됩니다. 최근 발표된 한국건강지수는 이 모든 요소가 건강의 주변 이야기가 아니라 중심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켜 줍니다. 결론은 단순합니다. 걷기 좋은 도시가 건강도시입니다.

한국건강지수는 만성질환, 보행 환경, 생활습관, 의료 접근성 등을 종합해 도시별 건강 수준을 비교하는 지표입니다. 과천, 강남3구, 분당, 용인, 세종, 수원 영통 등 상위권에 오른 도시들은 서로 다른 이미지와 역사, 인구구조를 갖고 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운동을 따로 계획하지 않아도 일상 속에서 걸음이 만들어지는 구조를 이미 상당 부분 갖추고 있다는 점입니다.

끊기지 않는 보행 동선이 만들어내는 숨은 운동량

도시는 걷기를 허락하기도 하고, 막기도 합니다. 보도가 중간에 끊기고, 횡단보도 간격이 멀고, 마트·공원·도서관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면 하루 3,000보를 채우기도 어렵습니다. 반대로 집 앞 골목에서부터 보행로가 이어지고, 생활 편의 시설이 한 동선 안에 모여 있으면 운동을 맘먹지 않아도 하루 7,000보, 1만 보가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한국건강지수 상위 도시는 이런 숨은 보행 동선을 풍부하게 가진 곳이라는 점에서 공통적입니다.

일본 도쿄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지하철 역세권 주변에 상가, 편의시설, 공공시설을 보행 중심으로 배치한 결과 65세 이상 노인의 일일 이동량이 다른 도시보다 월등히 높고, 고독감과 우울감 지표가 낮게 나타났다는 연구가 여러 차례 보고되었습니다. 덴마크 코펜하겐은 걷기와 자전거를 중심에 둔 교통정책을 시행한 후 중년 이후의 체중 증가 속도가 완만해졌고, 캐나다 밴쿠버는 주거지역과 공원, 해안 산책로를 하나의 생활 동선으로 연결한 뒤 시니어의 주간 보행 시간이 두 배 가까이 늘어났습니다. 도시 설계가 바뀌자 사람들의 걸음과 건강지표가 함께 달라진 것입니다.

초단거리 공원 접근성이 건강수명을 좌우한다

한국건강지수에서도 공원 접근성은 중요한 변수로 작동합니다. 집에서 5~10분 거리 안에 앉아서 쉴 수 있는 공원이나 작은 녹지가 있는지, 그 공간이 마트·지하철·버스정류장 같은 생활 동선과 자연스럽게 연결돼 있는지가 시니어의 보행량과 밀접하게 연관됩니다. 공원은 단지 풍경을 위한 장식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잠시 내려놓게 하는 안전지대입니다.

영국에서 진행된 한 연구에서는 집 근처에 공원이 있는 지역의 65세 이상 노인이 그렇지 않은 지역보다 주간 보행량이 눈에 띄게 높고, 비만과 우울감 비율이 낮게 나타났습니다. 일본 사이타마 시 조사에서는 계단 대신 산책로와 녹지가 잘 조성된 지역일수록 근감소증 위험이 낮게 보고되었습니다. 공원까지의 거리가 단순한 편의의 문제가 아니라 건강수명의 차이로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스트레스 없는 대중교통 환승이 외출 의지를 살린다

나이가 들수록 외출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모임의 즐거움만이 아니라 이동 과정에서 느끼는 피로와 불안입니다. 버스정류장까지의 거리, 지하철역 진입 동선, 환승 구조가 복잡하면 한 번 나갔다 오고 나서 며칠씩 지쳐 버리기도 합니다. 반대로 환승 동선이 단순하고, 정류장 주변이 넓고 안전하며, 횡단보도에서 오래 서 있지 않아도 되는 도시에서는 시니어의 외출 빈도와 보행량이 자연스럽게 유지됩니다.

스위스 취리히는 지하철, 트램, 버스 환승 동선이 짧고 직관적인 도시로 유명합니다. 여러 조사에서 취리히는 65세 이상 노인의 평균 이동 횟수가 높은 편에 속하며, 이러한 이동의 안정성이 건강수명과도 연결된다는 분석이 뒤따릅니다. 싱가포르는 지하철역, 버스정류장, 쇼핑몰, 공원 등을 촘촘하게 연결해 “걸으며 이동하는 생활”을 당연한 일상으로 만든 대표적인 도시입니다. 이런 곳에서는 외출이 특별한 행사가 아니라 평범한 하루의 일부가 됩니다.

걷기가 많아질 때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변화들

걷기는 단순한 칼로리 소모가 아닙니다. 일정 수준 이상의 보행이 꾸준히 이어지면 혈압과 혈당 조절 능력이 좋아지고, 다리와 엉덩이 근육량이 유지되며, 잠이 깊어지고, 불안과 우울감이 완화되는 효과가 나타납니다. 특히 시니어에게는 하루 한 번 길게 운동하는 것보다 짧은 시간을 여러 번 나누어 걷는 패턴이 더 현실적이고, 실제로 건강에도 유리하다는 연구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걷기 좋은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건강지표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의지를 끌어올리는 결심보다 도시 구조가 만들어 주는 보행 패턴이 더 강력한 힘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도시가 걷기를 밀어주면, 걷기가 건강을 밀어줍니다.

상위 도시가 아니어도 만들 수 있는 나만의 보행도시

지금 사는 동네가 한국건강지수 상위권 도시가 아니라고 해서 건강에 불리한 삶만 기다리고 있다고 볼 필요는 없습니다. 도시 전체는 빠르게 바뀌지 않지만, 내 일상의 동선은 오늘부터도 충분히 재구성할 수 있습니다. 집 근처에서 가장 걷기 편하고 안전한 길을 한두 개 정해 두고 그 길을 매일 왕복하는 것만으로도 하루 보행량은 크게 달라집니다.

가까운 공원을 “가끔 가는 곳”이 아니라 “하루에 한 번 들르는 곳”으로 바꾸고, 버스정류장까지 걷는 시간을 기본 운동 시간으로 삼고, 밤늦은 약속 대신 낮 시간대의 외출을 늘리는 것 역시 건강수명을 늘려 가는 선택입니다. 도시는 완벽하지 않더라도, 내가 자주 걷는 길을 다시 정하는 순간 그곳은 이미 나만의 작은 보행도시가 됩니다.

마무리 – 도시가 걷기를 만들고, 걷기가 시니어의 내일을 바꾼다

한국건강지수와 해외 보행도시의 흐름이 함께 보여주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걷기 좋은 도시가 결국 오래 사는 도시입니다. 보행 동선, 공원 접근성, 대중교통 환승 구조, 도시의 생활 리듬이 서로 밀어 줄 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몸과 마음은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달라집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지금 사는 동네를 조금 다른 눈으로 바라보며, 오늘 하루 나에게 가장 편안한 길 한 곳을 정해 보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어쩌면 그 한 걸음이 앞으로의 10년을 바꾸는 출발점이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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