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의 추억 – 사라진 공간, 남아 있는 마음
아이들이 모이던, 오래된 골목의 오후
햇살이 담벼락에 비스듬히 걸리던 오후, 아이들은 약속한 듯 골목으로 쏟아져 나왔다. 학교가 끝나면 가방은 문 앞에 던져놓고, 신발은 대충 벗어두고, 곧바로 넓은 놀이터 같은 골목으로 달려가던 시절. 그때의 골목은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공간이자, 지금도 시니어 세대가 마음 깊이 간직한 추억의 무대였다.
“노올자!”라고 부르면 시작되던 하루
“진호야, 노올자!” 누군가 외치면 집집마다 문이 열리고, 골목은 순식간에 아이들로 가득 찼다. 구슬치기, 딱지치기, 고무줄놀이, 비석치기. 놀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누구와 함께 있었는가, 그것이 하루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흙먼지가 일고 웃음이 번지며 하늘이 느리게 기울던 그 시간, 골목은 아이들의 학교였고 삶의 교실이었다.
골목을 채우던 소리와 냄새의 풍경
골목에는 언제나 다양한 소리가 흘렀다. 라디오 음악, 빨래 두드리는 소리, 고물상 수레의 쇳소리, 멀리서 들리던 “뻥이요—” 하는 외침. **뻥튀기 냄새**가 퍼지면 아이들의 눈이 잠시 반짝였고, 골목 전체가 하나의 살아 있는 생활 공간이 되었다.
저녁을 알리던 부엌의 연기와 밥 냄새
부엌에서는 연탄불에 불을 더 넣는 소리, 솥뚜껑이 들썩이는 소리가 이어졌다. 끓어오르는 밥물, 자글자글 끓는 된장국 냄새, 마당의 연기가 공기 속으로 퍼졌다. 어느 집에서 밥을 짓든 그 냄새는 서로의 집을 오갔고, 골목은 자연스럽게 하나의 부엌이 되었다.
“같이 먹자”라는 말이 있었던 시절
어디선가 “영철아, 밥 먹어라!”라는 소리가 들리면 아이들은 귀를 세웠다. 이름이 불리지 않은 아이는 계속 놀았지만, 어떤 아이는 부모가 늦게까지 일을 했다. 그런 날이면 옆집 아주머니의 한마디가 모든 걱정을 지웠다. “같이 먹자.” 그 말 하나면 충분했다. 밥 한 공기, 김치 한 접시, 그리고 사람의 온기가 함께했다. 골목은 서로를 품고 돌보는 작은 공동체였다.
골목은 공간이 아니라 관계였다
골목은 집과 집 사이의 빈틈이 아니라 관계가 오가는 통로였다. 함께 놀고, 함께 싸우고, 다음 날이면 아무렇지 않게 다시 모였다. 사과도, 설명도 필요 없었다. 다시 함께 노는 것이 곧 화해였다. 이 단순함 속에 인간 관계의 기술이 있었고, 그것이 시니어 세대가 잃지 말아야 할 마음의 풍경이다.
사라진 골목, 남겨진 침묵
지금은 골목도, 아이들도 없다. 아파트 복도는 반듯하고 깨끗하지만, 누가 웃는지, 어떤 냄새가 퍼지는지 알 수 없는 조용한 공간이 되었다. 골목이 사라지자 공동체의 기운도 함께 사라졌고, 도시는 발전했지만 기억의 자리는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그럼에도 지워지지 않는 마음의 골목
하지만 밥 짓는 냄새가 문틈으로 스며올 때, 우리는 문득 오래된 골목을 떠올린다. 흙먼지가 일던 바닥, 낮은 담벼락, “노올자!”라고 부르던 목소리. 그것은 사라진 공간이 아니라 여전히 마음속에 살아 있는 기억의 골목이다. 시니어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어린 시절의 자신과 마주하는 그 골목이 남아 있다.
남아 있는 마지막 문장, 그리고 온기
“석철아, 노올자.” 그 한마디 안에는 사람의 온기, 세월의 향기, 그리고 우리가 다시 찾아야 할 공동체의 기억이 담겨 있다. 골목은 사라져도 마음은 남아 있다. 그 기억이야말로 다시 복원해야 할 우리의 진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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