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로 본 나이 들어가는 나의 삶 ③
아픈 몸을 참고만 살지 않을 권리
나이가 들면 이런 말을 자주 듣습니다. “그 나이면 다 그렇지 뭐.” “어르신들 원래 여기저기 쑤셔요.” “검사해서 뭐하게요, 나이도 있는데.” 이 말들 속에는 묘한 메시지가 숨어 있습니다. ‘이 정도 불편함은 그냥 참고 사는 게 맞다’, ‘더 묻지 말고, 그냥 따라오라’는 신호입니다.
하지만 아픈 몸은 나이 탓이라는 한마디로 덮어 버릴 대상이 아닙니다. 특히 나이 들어갈수록 우리는 더 많이 물어볼 권리, 이해하고 선택할 권리, 다른 의견을 들어볼 권리가 있습니다. 이 글은 “참으세요”라는 말 앞에서 멈추고, 이렇게 되묻고자 합니다.
“나는 내 몸의 주인으로서, 어디까지 요구할 수 있는가.”
1. “나이도 있는데”라는 말이 가리는 것들
진료실에서 자주 벌어지는 장면이 있습니다. 증상을 이야기하면 “연세 생각하면 그럴 수 있어요.” “수술은 너무 부담될 수 있으니 그냥 이 약이나 드시죠.”라는 말이 돌아옵니다. 물론 나이가 들면 치료 방법을 신중히 고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나이도 있는데”라는 말이 모든 질문과 선택을 가로막는 순간, 문제는 달라집니다.
그 말 한마디에 가려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내가 정말 어떤 병을 갖고 있는지, 이 약과 검사, 시술이 각각 무엇을 위해 필요한지, 다른 선택지는 없는지, 부작용과 위험은 어느 정도인지, 지금 하지 않으면 나중에 어떤 차이가 나는지.
이것을 모른 채 “그냥 그러시죠”라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은 순종이 아니라, 정보를 충분히 받지 못한 상태에서의 동의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기준을 다시 세워야 합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내 몸에 대한 설명을 들을 권리, 다른 의견을 구할 권리, 이해되지 않으면 동의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2. 진료실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다섯 가지 권리
어려운 의학용어와 바쁜 진료 시간 속에서도, 마음 한편에 두고 있어야 할 다섯 가지 기준을 정리해 봅니다.
첫째, 설명을 요구할 권리.
“간단한 검사예요”, “다들 하는 수술이에요”라는 말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이럴 때 이렇게 물을 수 있습니다.
“지금 제 상태를 쉽게 한 번만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이 검사와 수술을 하면 좋은 점과 위험한 점을 함께 알려 주시겠어요?”
의사는 바쁘지만, 설명할 책임이 있습니다. 한 번에 못 알아들었다고 미안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둘째, 세부 내용을 다시 물어볼 권리.
동의서와 안내문은 글자가 작고 어렵습니다. 그럴수록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동의서에 적힌 핵심 내용을 말로 정리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약을 얼마나, 얼마나 오래 먹어야 하는지 다시 한 번 알려 주시겠어요?”
셋째, 다른 의견(세컨드 오피니언)을 구할 권리.
세컨드 오피니언은 말 그대로 ‘두 번째 의견’입니다. 지금 진료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전문의에게 한 번 더 설명과 판단을 들을 수 있는 권리입니다.
“중요한 결정이라 다른 병원 의견도 한 번 듣고 싶습니다.”
“검사 결과와 진료 기록을 복사해서 가지고 가도 될까요?”
이 요청은 예의가 부족한 행동이 아니라, 당연히 인정받아야 할 환자의 권리입니다.
넷째, 치료 여부를 함께 결정할 권리.
나이 들수록 ‘무조건 공격적인 치료’와 ‘아무것도 안 하는 것’ 사이에는 여러 단계의 선택지가 생깁니다. 약으로 조절할지, 수술을 할지, 통증 완화를 우선할지 등입니다.
“제 나이와 상태를 고려했을 때 선택지가 몇 가지인지 표처럼 정리해 설명해 주시겠어요?”
“지금 꼭 해야 하는 것과, 나중에 결정해도 되는 것을 나누어서 알려 주십시오.”
이런 질문은 의사가 부담스러워할 내용이 아니라, 함께 치료 계획을 세우자는 제안입니다.
다섯째, 통증과 불편을 ‘참지 않을’ 권리.
“그 나이면 원래 아프다”는 말은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통증은 삶의 질과 직결됩니다.
“이 통증이 병의 진행 때문인지, 조절이 가능한지 알고 싶습니다.”
“통증을 줄일 수 있는 방법과 약이 있다면 설명해 주세요.”
고통을 줄이는 것은 사치가 아니라 기본입니다.
3. 오늘, 스스로를 위해 해볼 수 있는 다섯 가지
권리는 진료실 문 안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 집에서 바로 시작해 볼 수 있는 몇 가지를 정리해 봅니다.
1) ‘나의 몸 기록’ 한 장 만들기.
자주 아픈 부위, 오래된 질환, 먹고 있는 약, 최근 몇 달 사이 달라진 증상을 종이에 정리해 둡니다. 병원에 갈 때 이 종이를 함께 가져가면, 짧은 진료 시간에도 더 정확한 설명을 들을 수 있습니다.
2) 진료실에 들어가기 전에 질문 한 줄 적어두기.
“이번에 꼭 물어보고 싶은 것 한 가지”만 적어 보십시오. 예를 들어 “이 통증이 왜 생기는지”, “지금 약을 언제까지 먹어야 하는지”처럼요. 종이에 적혀 있으면 긴장해도 잊지 않습니다.
3) 중요한 진료에는 동행자 한 명 정하기.
가능하다면 가족·지인 중 한 사람에게 부탁합니다. “옆에서 들어만 주고, 내가 놓치는 걸 대신 물어봐 주세요.” 같이 들으면 기억도 더 정확해집니다.
4) 이해되지 않으면 “오늘은 결정을 미루겠다”고 말해 보기.
검사나 시술을 권유받았는데 설명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면, “오늘은 결정을 미루고, 집에서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멈추는 것은 겁이 많아서가 아니라, 자기 몸에 책임을 지려는 태도입니다.
5) 주치의·주요 병원을 미리 정해 두기.
여러 병원을 떠돌기보다, 기본적으로 갈 병원 한 곳, 검사와 상담을 맡길 내과·가정의학과 한 곳을 정해 둡니다. 내 몸을 계속 지켜보는 사람이 있을수록, 작은 변화도 발견되기 쉬워집니다.
4. 함께 요구해야 할 세 가지 방향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부분도 있습니다. 사회에 요구해야 할 최소한의 방향을 짚어 봅니다.
첫째, 설명 중심 진료를 위한 시간과 제도.
짧은 진료 시간에 긴 설명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현실은 환자의 탓이 아니라 제도의 문제입니다. 고령자와 만성질환자를 위한 충분한 설명 시간이 포함되도록 수가와 제도가 바뀌어야 합니다.
둘째, 세컨드 오피니언의 보장.
중요한 수술, 항암치료, 고위험 시술의 경우 다른 병원의 상담을 재정적 부담 없이 한 번 더 받을 수 있는 통로가 필요합니다. “다른 의견을 듣겠다”는 말을 눈치 보지 않도록 제도와 문화가 함께 바뀌어야 합니다.
셋째, 통증 조절과 완화의료에 대한 정직한 안내.
모든 병을 완치하지 못하더라도 고통을 줄이고 삶의 마지막까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선택지들이 있습니다. 통증 치료, 완화의료, 호스피스 같은 제도는 “마지막”의 상징이 아니라 “고통을 줄이며 존엄을 지키는 선택지”로 안내되어야 합니다.
5. 이 편이 남기고 싶은 한 줄
이 글은 “병원에 더 많이 가라”는 권유도, “치료를 포기하지 말라”는 추상적인 의지도 아닙니다. 그저 이 말을 함께 확인하고 싶습니다.
“나는 나이 들었다는 이유로, 설명도 없이 참고만 살아야 할 사람이 아니다. 내 몸에 대해 묻고, 이해하고, 선택하고, 통증을 줄일 권리가 있는 시민이다.”
이 기준을 마음속에 세워 두신다면, 다음 진료실 문을 들어설 때 적어도 “죄송합니다, 나이가 많아서요” 대신 다른 첫 문장을 꺼낼 수 있을 것입니다.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