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권리로 본 나이 들어가는 나의 삶 ④-집 안에 갇히지 않을 권리

권리로 본 나이 들어가는 나의 삶 ④
집 안에 갇히지 않을 권리

나이가 들수록 “밖에 나가는 일”은 점점 많은 조건을 필요로 합니다. 버스 계단이 높게 느껴지고, 지하철 계단은 끝이 없고, 마을버스는 줄어들고, 택시는 잘 서 주지 않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입 밖으로 이런 말이 나옵니다. “그냥 집에 있지, 뭐.” “괜히 나갔다가 넘어지면 애들한테 미안하지.”

그러나 병원, 시장, 동네 모임, 공원에 가는 일은 ‘외출’이 아니라 ‘생활’입니다. 집 안에 머무르는 것이 ‘안전’이 아니라 ‘고립’이 되는 순간,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나이 들어가는 우리는, 어디까지 움직일 권리가 있는가.”

1. 이동이 막히면, 삶도 같이 줄어든다

이동은 단순히 발걸음의 문제가 아닙니다.

병원에 가는 길이 너무 힘들면 검진과 치료는 계속 미뤄집니다.
시장과 마트 가는 길이 위험하면 식사는 대충, 끼니는 점점 불규칙해집니다.
동네 모임과 공원, 경로당에 가는 길이 멀면 사람을 만날 기회가 줄고, 우울과 무기력은 커집니다.

그래서 이동권은 건강권, 식생활, 정신 건강, 사회적 관계와 모두 연결되어 있습니다. “집 밖으로 나가는 힘이 줄어든다”는 말은 사실 “삶의 반경이 줄어든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2. 나이 들어가는 사람의 이동권, 네 가지 기준

이동권을 거창한 헌법 조항이 아니라 생활 기준으로 다시 정리해 보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 안전하게 오르내릴 권리.
버스 계단, 지하철 계단, 집 앞 경사로에서 “넘어질까 봐 두려운 수준”은 이미 기준을 아래로 낮춘 상태입니다. 난간, 손잡이, 계단 폭과 높이, 미끄럼 방지 같은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요구될 수 있습니다.

둘째, 병원·시장·공공시설에 닿을 수 있는 권리.
가까운 병원과 보건소, 마트와 시장, 주민센터와 복지관에 ‘혼자서’ 또는 ‘도움을 받아’ 도착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 번 가기가 너무 어렵다면, 그 지역의 구조를 문제로 봐야 합니다.

셋째, 선택 가능한 수단을 가질 권리.
버스·지하철뿐 아니라 콜택시, 복지 택시, 이동 지원 서비스, 마을버스 등 여러 수단 중 하나쯤은 나에게 열려 있어야 합니다. “운 좋으면 탈 수 있고 아니면 말고”인 교통은 고령자 기준에서 미달입니다.

넷째, “집 안에만 있으라”는 말에 질문할 권리.
낙상 위험이 있다고 해서 “그냥 집에만 계세요”라는 말로 끝낼 수는 없습니다. 위험을 줄이기 위한 장치와, 안전하게 오갈 수 있는 대안이 함께 제시되어야 합니다.

3. 오늘, 스스로를 위해 해볼 수 있는 네 가지

이동권도 한꺼번에 바뀌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작은 준비 몇 가지가 “그냥 집에 있을게요”라는 말을 조금 늦출 수 있습니다.

1) 나의 주요 동선을 한 번 그려 보기.
집에서 병원·보건소, 가까운 마트·시장, 주민센터·복지관·경로당까지 가는 길을 떠올리며 가장 힘든 구간이 어디인지 종이에 적어 봅니다. 계단인지, 언덕인지, 버스 정류장 거리인지, 환승 구간인지 구체적으로 써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2) 동주민센터·복지관에 이동 지원이 있는지 묻기.
다음 두 문장을 실제로 한 번 물어보는 것만으로도 상황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고령자를 위한 교통·이동 지원이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병원에 가기 어려운 분들을 돕는 서비스가 있는지 안내해 주세요.”

생각보다 다양한 제도가 있어도, 모르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질문할 권리”를 실제로 써 보는 것이 출발입니다.

3) 가족·지인과 ‘외출 원칙’ 세 줄 약속하기.
“넘어질까 봐 그냥 집에 있어야지” 대신, 다음과 같은 약속을 미리 만들어 둘 수 있습니다.

– 병원·검사일에는 가능하면 동행한다.
– 계단이 많은 곳은 다른 길이나 수단을 함께 찾는다.
– 외출이 두려울 때는 “그냥 안 갈래”가 아니라 “같이 방법을 찾자”고 말한다.

이 약속은 “괜찮겠지,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말로 외출을 계속 미루지 않도록 지켜 주는 안전장치가 됩니다.

4) 혼자 가는 길에 ‘중간 쉼터’를 정해 두기.
집에서 병원이나 시장까지 가는 길 중간에 쉬어 갈 수 있는 벤치, 카페, 공원, 은행 로비 등을 미리 정해 둡니다. “한 번에 가야 하는 길”이 아니라 “두 번, 세 번 나누어 가도 되는 길”로 바꾸는 것, 이것도 중요한 전략입니다.

4. 함께 요구해야 할 세 가지 방향

이동권은 개인의 체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지역과 사회에 분명히 요구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첫째, 고령자 이동을 고려한 대중교통 설계.
마을버스 노선, 정류장의 위치, 환승 동선, 엘리베이터 설치는 고령자·장애인의 이동을 기준으로 다시 설계되어야 합니다. “젊은 사람들이 편한 구조”가 아니라 “가장 이동이 어려운 사람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구조”가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 복지 택시·이동 지원 서비스 확대.
지자체마다 조금씩 다른 이름과 제도로 운영되는 복지 택시, 장애인 콜택시, 고령자 이동 지원 서비스가 실제로는 “알려지지 않아서 못 쓰는 제도”가 되지 않도록 안내와 접근성을 높여야 합니다.

셋째, ‘집 안에 갇힌 사람’을 찾는 지역의 눈.
이웃과 마을이 함께 “최근에 바깥에서 못 뵌 어르신은 없는지”, “병원에 가고 싶지만 길이 막혀 포기한 사람은 없는지” 살필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방문 돌봄, 생활지원사, 통장·반장, 복지관과 주민센터가 함께 연결된 동네일수록 집 안에 갇히는 사람은 줄어듭니다.

5. 이 글이 남기고 싶은 한 줄

이 글은 “힘들어도 더 많이 걸으라”는 조언이 아닙니다. 지금 체력보다 더 먼 곳을 억지로 가라는 말도 아닙니다. 단지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나는 나이 들었다는 이유로, 집 안에만 갇혀 있어야 할 사람이 아니다. 병원과 시장, 공원과 사람들 사이를 오갈 수 있는 길을 요구할 권리가 있는 시민이다.”

이 문장을 기억하신다면, 오늘 집 문을 열어 밖을 한 번 더 바라보는 눈도 조금은 달라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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